“본인이 자청했다.”

프로든 아마추어든 감독이나 코치가 하는 말 중에 듣기 불편한 말이다. 주로 선수를 혹사시키는 감독이 이런 말을 공개적으로 자주 한다. 유사 표현으로는 ‘본인이 뛰겠다는 의지가 강해서’가 있다. 자신의 책임을 교묘하게 부정하는 말이다.

정치철학자이자 작가인 한나 아렌트는 나치의 대표적인 전범인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참관하고 아이히만이 한 말들을 자신의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기록했다. 아이히만은 유태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일이 힘들지 않았냐는 질문에 힘들지 않았다고 답했다고 한다.

“사실 쉬웠다. 우리가 쓰는 언어가 그걸 쉽게 해줬다. 우린 그 언어를 암트스프라헤Amtssparache’라고 불렀다.”

암트스프라헤는 우리말로 옮기면 ‘사무 용어’, ‘관료 용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나로서는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상관의 지시였다.” “규칙이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아이히만은 이런 상투적인 말을 반복하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려 했다고 한다. 한나 아렌트는 틀에 박힌 관료의 언어 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아이히만을 보며 말하기의 무능이 어떻게 사유의 무능으로 이어지고, 결국에는 나치의 끔찍한 학살로까지 이어졌는지를 책에서 말하고 있다.

언어가 사고를 결정한다는 언어결정론에 대해서는 찬반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나는 사용하는 언어가 삶을 온전히 지배한다고까지 말하기는 어렵지만 세상을 인식하는 수준에는 분명히 영향을 미친다고 믿는 편이다. 언어가 세상을 내다보는 창, 사고의 방향을 이끄는 틀로서 한 사람의 의식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본인이 자청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아이히만의 상투적인 말들과 그가 벌인 참담한 만행들이 떠오른다. 상사의 지시, 법이나 규칙만을 앞세우며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은 위험한 존재가 된다.

“본인이 자청했다.””의 2개의 댓글

  • 2017년 5월 22일 10:3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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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미국에서 야구하는 아이를 둔 부모입니다. 이걸 보니 예전 경험이 떠오르네요. 아이가 9살 때 제 아이 팀의 코치가 경기 전에 아이를 마운드에 올려서 몸을 풀게 하더군요. 제가 같은 팀의 보조 코치여서 바로 가서 어제 던졌기 때문에 오늘은 아이를 올리면 안된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애가 원해서 했다고 하면서 되려 화를 내더군요. 그래서 어찌됐거나 어제 많이 던져서 오늘은 안된다고 하면서 당장 내리라고 했습니다. 자초지종을 알고보니 아이한테 가서 던지고 싶냐고 물어봤더군요. 당연히 아이는 던지고 싶다고 했구요. 저한테 물어보면 안된다고 할 것을 잘 아는 사람인데 그런 방식으로 이유를 아이한테 돌리는 것을 보고 참 화가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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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년 6월 1일 11:4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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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그러셨군요. 그래도 용기있게 잘 대응하셨네요. 한국은 감히 말도 못하는 분위기인데 그나마 부럽기도 합니다.^^ 경험을 나눠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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