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걔 진짜 잘해”라는 아이의 말
가끔은 시합을 앞두고 아들이 자기가 상대할 친구나 형이 얼마나 잘하는지 말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아빠. 걔 진짜 잘쳐”
“그 형 공은 아무도 못칠걸?”
“00이는 내 공 못치는게 없어”
아들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저는 아들의 힘을 북돋워줘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조급하게 말을 건네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 아빠도 걔 던지는거 본 적 있는데 제구는 별로던데?” (괜한 허위날조 ㅎㅎㅎ)
“니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니 공이 더 빨라.” (진짜? ^^)
“아무리 잘쳐도 모든 공을 다 안타를 칠 순 없어. 그럼 사람이 아니라 기계지. 투수는 그냥 자신있게 던지면 돼” (어디서 주워들은 영혼없는 야구격언ㅋ)
그때 마침 비폭력대화를 배우고 있던 때라 말 뒤에 숨은 욕구와 감정에 관심이 많을 때였습니다. 어느 순간 아들이 그런 말을 했던 속마음을 제가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들은 혹시 다른 친구들이 얼마나 잘하는지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그런 친구들과 상대해서 삼진을 먹거나 홈런을 맞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실제로는 이런 속마음이 아니었을까?
“OO이한테 또 얻어 맞을까봐 걱정돼. 그럼 창피할텐데”
“이번에도 OO이가 던지는 공에 삼진을 당하면 어떡하지? 아빠가 실망하겠지?”
아들이 그런 말을 하며 마음 깊은 곳에서 원했던 것은 아빠의 어설픈 동기부여나 조언이 아니었을 겁니다. ‘이 녀석이 왜 이런 이야기를 할까?’ 깊이 헤아려보고, 아들이 하는 걱정에 대해 진심으로 공감해 주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아마도 이런 말을 해주었다면 더 마음 편히 경기를 즐길 수 있었을텐데요.
“00한테 또 안타 맞을까봐 걱정돼? 아빠는 안타를 맞든 홈런을 맞든 네가 야구장에서 즐겁게 운동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데?”
이미 지나간 시간. 저는 그렇게 하지 못했고 가끔씩 아빠의 어설픈 충고가 트라우마가 된 기억들을 아들로부터 듣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