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복하라는 이야기를 쉽게 하면 안되는 이유
문요한 소장님의 글이 제 마음에 닿은 지점이 있어서 퍼왔습니다. 제 기준에는 상당수 학교들의 연습환경이 아이들에게 무척 위험해 보입니다.
정훈씨는 여섯 살 무렵에 엄마가 가출하는 바람에 새어머니가 들어오기까지 조부모와 친척들의 손에 길러졌습니다. 엄마에게 버림받은 그 경험은 삶 전체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타인의 시선에 대해 지나치게 신경을 쓰고, 누군가 자신을 싫어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면 이를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고 맙니다. 그는 성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과거의 상처에 매어 안정적인 대인관계를 하지 못하는 자신을 심하게 비난합니다.
우리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어린 시절의 역경을 딛고 더욱 강한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에 빠져듭니다. 그래서일까요? 과거의 고통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자꾸 과거에 매이지 말고 이를 이겨내라는 이야기를 쉽게 건넵니다. 이는 아동기 부정적 경험을 겪은 이들에게는 이중의 절망감을 안겨줍니다.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 여전히 힘든데다가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또 다른 절망감과 수치심에 시달리게 됩니다.
어린 시절의 불행을 극복하고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사실 일반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특별한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아동기의 부정적 경험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생물학적으로 깊이 각인되어 발달에 아주 깊은 영향을 남기기 때문입니다. 아동기 트라우마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아동기 스트레스를 심신의 발달에 미치는 영향에 따라 세 가지로 구분합니다.
첫째, 긍정적 스트레스Positive Stress입니다. 안정적인 관계 안에서 일시적으로 애착욕구의 좌절을 겪거나, 형제끼리 다투고 화해하거나, 예방접종을 맞거나, 어린이집에 등원하는 등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일시적으로 스트레스 호르몬이 쏟아지지만 다시 안정을 되찾게 되는 경우입니다. 이는 유아적 욕구를 탈피하고, 사회성을 발달시키고, 회복력과 용기를 길러내는 등 아동기 발달의 긍정적 요소로 작용합니다.
둘째, 견딜수 있는 스트레스 Tolerable Stress입니다. 이는 다쳐서 병원에 입원하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하는 등 긍정적 스트레스에 비해 보다 지속적인 심혈관계 반응과 스트레스 호로믄의 상승을 유발합니다. 하지만 ‘아이를 돌봐주는 어른들의 존재’로 인해 시간이 지나며 차차 완화되는 스트레스를 말합니다.
셋째, 독성 스트레스toxic stress입니다. 이는 신체, 정서, 성적 학대나 방임이나 반복적인 폭력의 목격 등 민감한 아동기 동안 적절한 완충이나 보호 없이 쏟아지는 다량의 스트레스를 말합니다. 이는 아이를 돌봐주는 어른들의 부재로 인해 장기적으로 스트레스 반응체계를 활성화시켜 신경학적 손상을 야기함으로써 성인기까지 그 영향력이 지속되는 스트레스를 말합니다.
아동기의 독성 스트레스는 아이 혼자의 힘으로 회복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성인기까지 지속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한 사람으로서의 가치감과 세상에 대한 기본적 신뢰를 붕괴시키고 자기조절 체계를 망가뜨리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소한 스트레스나 자극에도 강렬한 스트레스 반응이 유발됩니다. 더 나아가 인지발달에 영향을 미치고 심장병과 뇌졸증 등 각종 질병에 걸릴 위험성도 높아진다는 게 지난 20년 동안의 아동기 부정적 경험에 대한 연 구결과입니다.
누군가 과거의 부정적 경험으로 지금도 힘들어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가 나약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만큼 그 상처가 생물학적으로 각인될 만큼 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요?
글 : 문요한 (문요한 마음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