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가 자신의 느낌을 100% 믿어서는 안되는 이유
요즘 일본 최고의 좌완투수라고 할 수 있는 기쿠치 유세이 선수를 소개하는 글에서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와 옮겨봅니다.
“쓰리쿼터라고 생각하고 던지면 오버스로가 된다. 이를 의식해 사이드라고 생각하며 쓰리쿼터로 던지고 있다.”
우리 몸은 오랜 시간 반복된 움직임을 하며 무의식적으로 변해갑니다. 거울 앞에서 똑바로 선다 생각하고 자세를 잡은 후 눈을 떠서 자신의 몸을 보면 어딘지 ‘똑바르지 못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머리가 한 쪽으로 기울어져 있을 수도 있고, 한쪽 어깨가 올라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균형을 잡고 몸의 느낌을 다시 느껴보면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느낌이 느껴집니다.
이렇게 느낌과 실재가 차이가 나는 ‘감각인식오류’ 현상이 있기에 선수는 자신의 느낌을 100% 맹신해서는 안되는 것이죠. 코치는 그래서 가끔 선수의 실재 동작을 영상이나 사진으로 보여주며 선수와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습니다. 가끔씩 영상을 찍어 보여주는 작업도 그런면에서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일전에 최원호 위원께서 하신 말씀을 함께 보면 도움이 될 듯 합니다.
“피칭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최원호 SBS 해설위원은 선수가 변화의 과정에서 ‘느낌’에 지나치게 휘둘리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많은 선수들이 자신의 느낌에 민감하다 보니 착각에 빠진다는 것이다. 새로운 투구 동작으로 변화를 시도할 때 ‘불편한 느낌’이 따라오는 것은 당연한데도 단지 그 느낌이 싫다는 이유로 변화를 거부하거나 피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고 한다. 교정 작업을 통해 제구가 좋아지거나 구속이 향상되고 있는데도 어딘지 불편한 느낌이 올라오면 의심을 하고 불안해 한다는 것이다. 결과가 바람직한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다면 바뀐 동작이 자리잡을 때까지 ‘불편한 느낌’을 고스란히 겪으며 가야 하는데 다시 이전의 ‘편안한 느낌’으로 돌아가며 변화가 결실을 맺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동작의 변화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불편한 느낌’을 그대로 느끼면서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최원호 위원은 말한다.
“판단의 기준은 동작을 보고 좋다, 나쁘다고 하면 안되고 현상을 봐야할 것 같아요. 투수라면 원하는 곳에 정확히 던질 수 있냐는 것이죠. 육안으로 볼 때는 정말 폼이 안좋은데 원하는 곳에 던지고 있다면 좋은 폼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좋은 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원하는 곳에 못던지고 있다면 그건 나쁜 폼이구요. 나타난 현상이 좋은지 안좋은지가 중요합니다. 내가 좀 불편해도 현상이 좋아졌는지, 나는 더 편해졌는데 이상하게 현상이 나빠졌는지, 이걸 잘 판단해야 합니다. 느낌이 좋아지면 뭐하겠어요? 현상이 나빠졌는데. 느낌은 조금 불편해도 현상이 좋게 나타나고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죠.
선수들이 대개 자신의 느낌에 상당히 민감하다 보니 착각에 빠집니다. 공은 제대로 안가는데 느낌이 좋으면 그냥 그대로 해요. 반대로 엉망으로 던지다가 교정을 통해 제구가 좋아져도 뭔가 불편하면 그대로 안해요. 느낌이 중요한게 아니거든요. 현상이 중요해요. 타자가 자기 스윙의 느낌이 좋으면 뭐하겠어요? 공을 못맞추는데. 원인을 찾아서 맞출 수 있게 훈련을 해야죠.””
ps. 이런 현상은 몸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닐겁니다. 우리는 원치 않는 생각이나 감정에 대해서도 은연중에 편안함을 느끼곤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