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유니폼 화형식 (이딴게 내 응원팀이라니 1편)

지난 2021년 부산국제영화제 최고 화제작은 다큐멘터리 영화 <성덕> 이었다. ‘성덕’ 자체의 의미는 ‘성공한 덕후’, 즉 ‘성공한 팬’과 같은 의미다. 그러나 카메라는 진짜로 ‘성공한 덕후’ 대신 범죄를 저지르거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연예인(주로 케이팝 아이돌)의 팬들을 좇는다.

​우상의 몰락 앞에 이들은 강렬한 분노와 배신감에 휩싸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연예인이 저지른 범죄의 피해자를 비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성공한 덕후’였던 팬들은 연예인의 추락과 함께 ‘실패한 덕후’로 전락한다. 제목 자체가 역설적인 말장난인 셈이다.

이미 매진되어 구할 길이 없다는 표를 여기저기 물어물어 겨우 얻은 끝에 간신히 이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그야말로 심금을 울리는 영화였다. 케이팝 아이돌을 좋아해본 적은 없었지만, 야구선수라는 ‘우상’과 함께 살아온지도 어느덧 십여 년이 넘은 나에게 ‘우상의 몰락’이란 너무나도 익숙한 형태의 재난이었다. 심지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계절성 재난이라고나 할까.

​영화 속에서는 주로 성폭력 관련 사건들이 등장하는데, 프로야구 팬으로 살다보면 비시즌마다 SNS를 통해 찾아오는 것이 성폭력 관련 폭로다. 어디 성폭력 뿐일까. 프로야구를 빛내는 우리들의 별들이 저지른 ‘사고’들을 하나하나 꼽다 보면 살인, 강간, 사기, 도박, 마약, 병역비리, 음주운전 등 끝이 없이 펼쳐지는 다채로운 강력범죄들에 내가 보는 것이 프로야구인지 <그것이 알고 싶다>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심지어 야구계 내 스캔들인 도핑과 승부조작은 포함시키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프로야구 팬들은 이런 ‘계절성 재난’에 어떤 멘탈로 대처할까. 사실 워낙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보니 이제는 웬만해서는 크게 놀랍지도 않다. 다만 ‘우리 팀 선수만은 아니길…’ 하고 바랄 뿐이다. 우리 팀 선수가 아니라면? 속 편하게 욕하면 된다. 입 걸기로는 어디 가서 절대 빠지지 않는 팬덤이 바로 프로야구 팬덤이기 때문에 비난과 욕설의 수위 또한 매우 높다.

​그렇지만 만약 우리 팀 선수라면? 그때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뼈를 깎는 ‘내팀내까(내 팀은 내가 깐다)’의 심정으로 더욱 거품을 물고 비난을 하거나, 혹은 현실을 부정하며 선수를 옹호하거나(요즘은 이런 경우는 드문 편이다.), 혹은 잘못은 선수가 했는데 왜 팬을 욕하냐며 다른 팀 팬들과의 ‘키배’에 몰두하는 선택지들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선수가 구단이나 사무국으로부터 제대로 된 징계를 받았을 때의 일이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징계란 무엇인가? 세상의 모든 형벌이란 일정 부분 자의적인 구석이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제대로 된 징계’에는 일관성, 그리고 형평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상벌의 기준 자체가 오락가락하거나, 혹은 누구는 복귀시켜주고 누구는 안 시켜준다면 누가 그 징계를 납득하겠는가?

​연재물의 첫 편을 이런 주제로 시작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공교롭게도 글을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은 순간 음주운전 쓰리아웃으로 리그에서 영원히 퇴출되었다고 굳게 믿고 있었던 강정호의 키움 히어로즈 복귀 소식이 들려왔다. 그렇다. 나는 (키움*) 히어로즈 팬이다. (*이 자리에는 히어로즈 구단의 해당 해의 메인스폰서가 들어간다.) 그렇기에 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정호의 복귀를 비판할 수 있는 논리는 수없이 많다. 음주운전 자체가 상습적이었기에 사실상 리그 퇴출에 가까운 처분을 받았고, 강정호의 자리를 메웠던 어린 선수들은 어쩔 것이며, 그리고 같은 죄목으로 퇴출된 다른 선수들과의 형평성 또한 문제가 된다. 또한 팬으로서, 그리고 시민으로서 이미 퇴출된 선수를 최저연봉으로 대충 싸게 쓰다가 비싸게 팔아치우려는 속내가, 노동윤리상으로도 건전하지 않다는 것 또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리그 전체의 신뢰를 깨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보다 먼저 말하고 싶은 건 이렇게 구단과 사무국이(만약 강정호의 임의탈퇴 해지를 승인해준다면) 스스로 ‘몰락’의 길을 걷는다면, 팬들은 어떻게 해야 하냐는 것이다. 단순히 ‘팀세탁’을 하면 되는 것일까? 아니면 더 이상 ‘프로야구’를 소비하지 않으면 되는 것일까? 사실 이게 합리적인 선택일 테지만 그게 안 되니까 ‘팬’으로 살아가는 게 아니겠느냔 말이다.

​강정호 유니폼은 한때 히어로즈 팬들의 ‘교복’ 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나 역시 그의 국가대표 유니폼을 한 벌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퇴출과 함께 유니폼 역시 내 옷장에서 퇴출됐다. 그때 유니폼을 조용히 버렸던 것이 많이 후회된다. 좀 더 시끄럽게, 화형식이라도 하고 버릴 걸. 이제 와서 다시 그 유니폼을 구할 수는 없을 테니 고척돔이라도 불태우고 싶은 마음이다. 이게, 팬의 마음이다.

​작가 소개 : 구슬
KBO리그와 히어로즈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언제 망하는지 두고보자며 이를 갈게 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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