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파일링이 피칭전략의 토대
뉴스레터 10호 ‘코치라운드 생각’
이번에는 어느 외국인 투수코치님과 나눈 이야기를 살짝 나눠볼까 합니다. 시즌 초 이 팀의 투수들은 KBO리그 역사를 통틀어 보아도 놀라운 수준의 탈삼진 비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느 팀이나 선수의 경기력 변화를 한두 가지 이유로 설명하는 것은 많은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만 제가 한달 정도 이 팀의 경기를 주의깊게 관찰한 바로는 구종과 로케이션의 단순화가 눈에 띄었습니다. 이런 점들에 대해 넌지시 묻자 코치님께서는 대체로 수긍을 하시면서 피치 디자인 관련하여 선수들과 기울였던 노력들을 몇 가지 말씀해 주셨는데요. 뉴스레터를 통해 기회가 닿는대로 조금씩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아직 시즌 초반이라 ‘이래서 달라졌다!!’고 말씀드리기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래의 내용들은 앞으로의 퍼포먼스와 관계없이 나눠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코치님께서는 오프 시즌 동안에 개별 선수를 대상으로 한 구체적인 피치 디자인 작업 이전에 먼저 ‘프로파일링profiling’ 작업을 했다고 합니다. 프로파일링?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단어지만 낯선 표현이기도 입니다. 보통 인터넷에서 인물 검색을 하면 그 사람의 프로필profile이 주루룩 소개됩니다. 이력서를 쓸 때도 우리는 프로필이라고 하는 것을 적습니다. 여기서 프로필은 한 사람의 이력과 경력 등을 소개하는 개념으로 쓰입니다. 프로필을 통해 우리는 어떤 사람의 살아온 궤적, 경험, 사회적 관계 등을 얼추 파악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범죄수사 분야에서 프로파일링이라는 단어를 자주 접할 수 있습니다. 범죄자 프로파일링이란 범죄자의 심리와 행동 등을 분석해서 범죄의 유형별로 범인의 상(像)을 추정하고, 피의자 신문 전략 수립을 지원하는 등의 과학적 수사 기법을 말합니다. 수요와 관심이 늘면서 프로파일러라는 전문 직업도 생겨났습니다.
그렇다면 코치님께서 언급한 프로파일링 작업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선수의 과거 경기 실적과 데이터 등을 바탕으로 선수의 현재를 투명하게 비추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코치님께서는 프로파일링을 하는 목적을 선수마다의 아이덴티티identity를 발견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선수가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분명히 인식하고 경기를 하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아이덴티티도 우리말로 옮기기 까다로운 단어입니다. ‘정체성’ 정도로 해석하면 좋겠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분명한 인식, 장점과 단점에 대해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모습 정도로 이해해도 좋을테구요.
선수가 아이덴티티를 찾아가는 과정에는 데이터 분석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코치님은 강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코치님께서는 프로파일링을 통해 준비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캠프 기간 내내 선수에게 질문을 던졌다고 합니다. 투심이 주된 구종인 선수에게는 왜 투심을 던지는지, 스플리터를 제1변화구로 던지는 선수에게는 왜 그것을 주된 변화구로 던지게 되었는지, 또 슬라이더를 던지지 않는(!) 선수에게는 왜 그것을 던지지 않는지 등을 계속 물으면서 선수가 자신의 피칭을 돌아보는 기회로 삼았다고 합니다.
선수가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찾아가는 과정에는 반드시 ‘WHY? (이유)’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이 하는 모든 선택에 대해 이유를 분명히 알아야 마운드에서도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면서요. 이유를 명확하게 알고 던지는 공과 단지 팀에서, 포수가, 코치가 던지라고 해서 던지는 공은 차이가 크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스프링 캠프 내내 투수 한명한명과 아이덴티티를 찾아가는 시간을 가졌고, 그것이 어느 정도 완성되었다는 생각이 들 때 자신의 공을 어떤 순서와 어느 로케이션으로 던지는 것이 성공의 확률을 높이는지, 소위 말하는 피치 디자인 작업으로 넘어갔다고 합니다. 지금은 놀라운 변화를 보여주고 있지만 긴 시즌을 지나며 분명 어려운 시기를 마주하게 될테지요. 그런 상황에서 이 팀의 투수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지켜보려 합니다. 매우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
사진은 아이오와대학 코치가 한 장으로 정리해 관리하는 투수프로필입니다. “숫자는 선수가 무엇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지 알게 해준다”는 것이 프로필을 만드는 Desi Druschel 코치의 생각입니다. (출처 : Desi Druschel 코치 트위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