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의 성장을 위한 기본조건

뉴스레터 18호 ‘코치라운드 생각’입니다.

​얼마 전 메이저리그에서는 한 코치의 이적이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미네소타 트윈스의 웨스 존슨 투수코치가 루이지애나 주립대학의 코치로 자리를 옮긴다는 뉴스 때문이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코끼리야동클럽을 통해 두 차례나 이 분의 강연을 다룬 기억이 있어서 더욱 흥미롭게 진행과정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대학야구 코치에서 마이너리그 코치로 스카웃된 코치는 전에도 더러 있었지만 바로 메이저리그 코치로 영입된 것은 4년 전 웨스 존슨 코치가 최초였습니다. 그렇게 화제를 모으면서 메이저리그에 입성하고 불과 4년여만에 다시 대학야구팀 코치로 삶의 방향을 바꾼 것인데요. 미네소타에서 받은 연봉은 35만달러(약 4억4천만원)이고 루이지애나 주립대학에서 받게 될 연봉은 75만달러(약 9억5천만원)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미국의 대학야구는 시즌이 보통 3~5월 사이에 치뤄지기 때문에 경기수도 메이저리그의 절반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금전적인 면이나 생활적인 면에서 모두 어찌보면 ‘워라벨’을 추구하기에는 대학야구팀이 훨씬 나은 조건인 것이죠.

​루이지애나 주립대학은 애런 놀라, 알렉스 브레그먼, DJ 르메이휴, 케빈 가우스먼 등 메이저리그 스타선수들도 많이 배출한, 소위 말해 야구명문 대학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학교의 야구팀들은 왠만한 빅리그팀의 마이너리그 육성시스템보다 나은 환경과 지원을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선수들의 수준은 물론, 시설, 장비 면에서도 최고 수준을 갖추고 있기에 코치들도 다양한 실험을 통해 코치로서의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누리게 됩니다. 최근 들어 다양한 측정장비들을 능숙하게 다루는 대학야구의 코치들이 마이너리그의 코치나 디렉터 등으로 자리를 옮기는 현상도 대학야구의 선수육성 노하우가 빅리그팀에 못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흐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코치들의 성장을 촉진하는 또다른 요소가 있다면 바로 코치들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시스템일 겁니다. ‘팀의 우승’같은 드러나는 업적이 아니어도 자신이 중요하다고 믿는 피칭이나 타격 지표(예. 탈삼진율, 장타율)를 개선했다던가, 전에는 인식하지 못했던 요소를 발견하여 퍼포먼스를 비약적으로 개선했다든지(예. 투구인식 능력 향상) 하면 해당 코치는 팀의 성적과 무관하게 좋은 평가를 받게 됩니다. 올해 어마무시한 양키스 타선을 이끌고 있는 딜런 로슨 타격코치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보잘 것 없는 선수생활을 보내고 일찍 코치생활을 시작한 로슨 코치는 몇몇 대학을 거치며 자신만의 독특하고 창의적인 투구인식 연습방법을 만들어냈습니다. 단순히 그럴싸한 새로운 연습방법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실제 많은 타자들의 투구인식능력을 획기적으로 개선시켰습니다. 이런 코치를 메이저리그가 가만히 놔둘리는 없었고, 결국 코치로서 양키스의 줄무늬 유니폼을 입을 수 있었습니다.

딜런 로슨 코치의 사례는 객관적인 평가 시스템이 선수 뿐만 아니라 코치의 성장에도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평가와 피드백이라는 과정은 당연히 스트레스와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코치가 나름대로의 전문분야를 만들어 가는데 큰 동기부여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일부 팀에서는 코치가 감독보다 많은 연봉을 받으며 일하는 모습도 종종 나타납니다.

​코치로서의 전문성을 인정받으며 메이저리그와 대학야구를 오가는 저들의 모습을 보며 다시금 우리 코치들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을 돌아보게 됩니다. 미국 역시 많은 경우 자원봉사로 코치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기에 처음 코치생활을 시작하는 사람이 팍팍한 급여를 받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연차가 제법 쌓였는데도 박봉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코치들이 우리 야구계에는 무척 많습니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아마츄어 코치의 급여는 월 300만원을 넘지 못합니다. 초등/유소년 레벨에서는 100만원대의 급여를 받는 코치들도 수두룩하고요. 그러다보니 코치의 급여를 보충하기 위해 팀에 소속된 선수들에게 팀훈련 후에 개인레슨을 강요하는 볼썽사나운 일들도 종종 생기곤 합니다.

​근무조건도 무척 열악한 편입니다. 하루 7~8시간 선수들과 함께 땀을 흘려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별다른 휴식공간도 없이 선수들과 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코치들도 많습니다. 중고등학교의 경우에는 아침에 출석체크를 담당하는 코치들도 있는데요. 그런 분들은 하루 24시간 중에 거의 12시간 이상을 학교에서 보내야 하는 셈입니다. 코치로서의 능력을 키우기 위해 자기개발을 할 시간은 고사하고 온전히 몸과 마음을 쉴 시간도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대부분의 팀에서 기록과 데이터에 기반한 연습과 팀운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보니 코치의 역할을 평가하고 피드백을 제공하는 시스템도 사실상 없습니다. 우리 코치들이 받는 칭찬의 대부분은 “참 열심히 가르쳐. 아이들을 참 좋아해.” 이런 말들입니다. 열심히, 애정을 가지고 선수를 대하는 것은 교습가로서 필요한 태도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만이 코치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명확한 과제나 목표가 아니라 일을 하는 태도로서만 평가를 받는 코치는 어떻게 행동하게 될까요? 자연스럽게 선수보다는 감독이나 팀의 눈치를 더 많이 보게 됩니다. 자신이 연구하고 공부한 운동학습이론이나 연습방법을 책임감을 가지고 적용하기도 어렵습니다. 자신의 선택과 노력을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는 기회가 사실상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코치의 시간은 언제일 지 모르는 ‘감독’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버티는 시간들로 채워지게 됩니다. 구체적인 성과가 아니라 자리가 목표가 되는 직업의 세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 조금만 직장 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야구코치들은 삶의 안정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문제의식만이라도 공유했으면 합니다. 머슬로우의 욕구단계이론에서 가장 밑바닥에 깔려있는게 안전입니다. 성장의 욕구는 안전이 밑바탕이 되어야 피어난다고 머슬로우는 말하고 있습니다. 선수는 슬라이딩을 해도 다치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을 때 몸을 내던질 수 있습니다. 실수를 해도 혼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어야 선수는 도전적인 시도들을 기꺼이 하게 됩니다. 코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코치에게 사명감을 강요하기 전에 그들이 충분히 경제적으로,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안전한 환경 속에서 일하고 있는지 들여다 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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