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중 선수의 생각이 궁금하면 코치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라
KPGA 인사이트 포럼에 초대를 받아 강연을 했습니다. 저는 강연을 하게 되면 먼저 제가 할 말을 그대로 글로 적어보곤 합니다. 지금 다시 보니 글로 적은 내용을 절반 정도밖에 전달해 드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제가 한 말들을 살짝 글의 형식에 맞게 수정해서 현장에서 사용한 강연 자료와 함께 정리해 보았습니다.
(아래는 구글 Notebooklm을 이용해 6분 40초의 대화 형식으로 정리한 영상입니다.)
안녕하세요. 스포츠 코칭과 스포츠 과학을 테마로 책을 쓰고, 가끔은 책을 번역해서 소개하고, 몇 가지 행사를 진행하기도 하고, 콘텐츠를 유통하는 코치라운드의 최승표입니다. 귀한 자리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루의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컴퓨터 앞에 앉아 혼자 이것저것 하며 지내는 게 일상이다 보니 종목에 관계 없이 현장에서 선수들과 희노애락을 같이 하는 코치분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는 일이 저에게는 가장 즐겁고 보람있는 시간입니다.
솔직히 저는 지금 골프를 치지 않습니다. 선수 생활을 한 적도 없고 가르쳐 본 일도 없습니다. 저의 이모님께서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지역에 사시는데, 재작년에 그곳에서 머물 때 집 앞에 있는 골프장을 혼자 돈 적이 있습니다. 미국에는 골프장 바로 옆이 주택가인 지역이 있잖아요? 이모님 댁이 바로 그런 지역이었습니다. 클럽하우스까지 5분이면 걸어가는 거리여서 매일 골프장 주변을 산책하곤 했습니다. 계속 산책을 하다 보니 오랜만에 한 번 쳐볼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골프채를 클럽하우스에서 빌리고 공 몇 개 사서 혼자 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카트비 아끼겠다고 걸어서 시작했다가 너무 더워서 9홀만에 접었습니다. 9홀 마치고 그늘집에서 맥주 한 캔 마시니 도저히 나머지 9홀을 걸을 엄무가 안 나더라구요. 그때가 마지막으로 골프채를 잡았던 기억입니다.

이렇게 골프의 경험이 일천하기 때문에 골프를 잘 가르치는 방법에 관해 제가 여기 계신 분들께 떠드는 건 적절하지 않을 듯 합니다. 사실 강의 의뢰를 받고 나서는 골프와 관련한 여러 코칭 사례나 연구 자료 등을 찾아보았습니다. 제가 출판한 여러 책들에도 골프에서의 움직임이나 멘탈 관련한 내용들이 제법 많아서 그런 것들을 정리해서 소개해 드려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쭉 훑어보았습니다.
저는 강연을 하게 되면 제가 할 말을 글로 먼저 적어보는데요. 그렇게 스크립트를 쓴 다음 스스로 읽어보면서 저의 목소리를 녹음합니다. 그런 다음 청중의 입장에서 들어봅니다. 제가 보기에는 대범해 보이지만 제법 긴장을 많이 하는 성격이라 이런 프로세스를 두세 차례 돌리면 강연을 준비하는 데 큰 도움이 되더라구요. 특히 정신적인 면에서요. 이 프로세스를 한 번 돌리고 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건 나의 이야기가 아닌데.’
작가나 PD의 고민이 느껴지지 않는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랄까. 마치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의 쇼츠를 오랜 시간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참 그런 짧은 영상들을 보고 있다 보면 재미있어서 계속 스크롤을 하긴 하는데 뇌는 정지된 것 같은 느낌 있잖아요. 저의 강연 스크립트에서 그런 느낌이 들어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골프랑 직접 관련은 없더라도 제가 직접 경험한 것들, 그 경험으로부터 파생된 고민의 흔적을 말씀드리는 게 이렇게 서로 만나 이야기 나누는 공간과 시간을 더 의미있게 사용하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여기 계신 분들은 맨날 하는 게 골프 이야기니까 조금 다른 시각에서 듣는 다소 낯선 이야기가 오히려 새로운 자극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의 인생 스포츠는 사실 농구인데요. 얼마 전에 뛰다가 종아리와 허벅지가 동시에 터지기 전까지 코트에서 20대 젊은이들이랑 같이 미친 듯이 뛰어다녔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농구를 깊이 있게 이론적으로 파고들었던 것은 아니구요. 아들이 엘리트 야구를 시작하면서 야구를 중심으로 스포츠 코칭의 세계를 보다 깊이 있게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야구와 골프는 여러 측면에서 비슷한 구석이 많습니다. 투수의 피칭, 야구의 타격, 골프의 스윙 모두 회전 운동과 병진 운동에 기반한 편축 움직임이구요. 경기의 구조 측면에서도 경기 시간은 제법 길지만 실제 플레잉 타임은 무척 짧다는 게 공통점입니다. 야구는 3시간 정도의 경기 시간 중에 플레잉 타임은 10~15분 정도에 불과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골프는 그보다 더 적지 않을까 싶습니다. 소위 말하는 데드 타임이 경기 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다음 플레이를 위해 흘려보내야 하는 시간이 길다 보니 두 종목 모두 선수들 머릿속에서는 온갖 생각과 감정들이 들끓게 됩니다.
왜 지금 공을 치지 않았을까?
왜 바보같이 바람을 더 고려하지 않았지?
여기서 못치면 다음 경기 못나올 지도 모르는데.
저 자식 벌써 2타차로 따라왔네. 여기서 더 좁혀지면 다음 홀은 내가 약한 홀인데.
여러 생각들과, 그 생각에 결부된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야구 선수들과 골프 선수들이 자신의 내면을 컨트롤하기 위해 저마다 루틴을 만들어서 실천합니다. 기본적으로 심호흡을 루틴으로 가져가는 선수들이 많구요. 박병호 선수처럼 배트를 한 번 쳐다보기도 하고, 어떤 선수는 외야 폴대를 한 번 쳐다 보면서 타격을 준비하기도 합니다. 어떤 메이저리그 내야수는 수비 동작에 들어가기 전에 관중석에 있는 빨간 모자의 숫자를 세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가 골프 선수의 루틴과 관련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는 10년 전 쯤에 읽었던 김효주 선수의 케이스입니다. 일간스포츠 기사로 김효주 선수의 멘탈 노트에 관한 이야기가 소개된 적이 있는데요. 김효주 선수는 보기를 하면 무조건 한 모금의 물을 마셨다고 합니다. 물을 마시는 행위를 통해 조금 전의 실수가 불러일으킨 생각이나 감정을 앞으로 해야 할 플레이와 단절시킨 셈입니다.

저는 물을 마신다는 루틴 자체보다 김효주 선수가 남긴 말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보기를 하면 다음 홀에서 버디로 만회하려는 마음이 강하게 올라온다는 겁니다. 그 긴장감을 줄이기 위해 물을 마신다고 했습니다. 저는 긍정적인 생각이나 긍정적인 확언 같은 셀프 토크의 효과에 의문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김효주 선수의 그런 말이 더욱 크게 와닿았습니다. 최근에 조코비치 선수도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긍정적인 생각의 효과를 자신은 믿지 않는다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경기 중에 잘못된 플레이를 하거나 점수를 잃거나 하면 부정적인 생각이 올라오는 것은 당연하며 그런 자신의 마음을 최대한 빨리 인식하고 다시 평소의 상태로 돌아오느냐가 오히려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원하는 생각으로 원치 않는 생각을 없애려는 시도가 별로 효과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오늘의 주제가 아니기 때문에 더 다루지는 않겠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코치, 선수들이 당연히 믿고 있는 ‘긍정적인 생각’이 정말 효과가 있을까 하는 주제에 대해서는 코치라운드 홈페이지에 관련 글을 몇 개 적어놓은 것이 있이니 관심 있는 분들은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아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연결됩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이제 주제로 넘어가기 전에 먼저 화면에 보이는 QR를 찍고 질문에 답해주시겠어요?

제가 운동을 좋아하다 보니 아이들이랑 어릴 때부터 같이 운동을 많이 했습니다. 솔직히 아이들이 아무리 예뻐도 운동하는 것 말고 다른 걸로 놀아주는 건 별로 재미가 없더라구요. 특히 남자 아이가 있는 분들은 다들 비슷한 경험이 있으실 듯 합니다. 주말마다 나가서 자전거를 타거나, 공원에서 축구를 하거나, 테니스공을 가지고 캐치볼을 하곤 했습니다. 비오는 날에는 볼링을 치거나 당구장도 다녔습니다. 가끔씩 그 시절을 회상하면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눈물이 날 때가 있습니다.
애들이 10살 정도 될 무렵에는 저도 골프를 가끔 치던 시기여서 스크린이랑 연습장도 몇 번 데리고 갔습니다. 하지만 아이들 데리고 연습장에 갔다가 눈치가 보여서 한 번인가 같이 가고는 말았습니다. 진지하게 연습하는 어르신들이 많고 또 한쪽에서는 레슨을 받고 있는 연습장에 아이들이 눈치 없이 행동하는 게 무척 신경이 쓰이더라구요. 집 앞에 88CC가 있는데요. 애들 골프장 구경시켜 주려고 데리고 몰래 들어갔다가 쫓겨난 적도 있습니다. 제가 골프를 그만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런 우리나라 골프 문화의 엄숙주의, 특별한 사람만이 즐기는 특별한 운동이라는 분위기도 작용을 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특히 권위를 자기 스스로 앞세우는 사람, 줄세우는 걸 좋아하는 조직이나 문화를 탐탁치 않게 여기는데요. 클럽하우스에 도착해서 다시 골프장을 빠져 나올 때까지의 여러 관행들이 불편했습니다.
다시 주제로 넘어와서(!)
15년 전 쯤에 운동을 하나 시켜야겠다고 생각해서 취미로 하는 야구 클럽에 큰 애를 보냈습니다. 기껏 해봐야 일주일에 두 번 가서 공이나 잡고 배트로 치고 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이것저것 관찰하길 좋아하는 제 눈에 여러 의아한 장면들이 들어왔습니다.
먼저, 처음 배트를 잡아보는 어린 아이에게 무거운 배트를 들고 스윙 연습을 시키니 아이들이 몸을 제대로 가누질 못했습니다. 아이가 배트를 다루는 게 아니라 배트가 아이를 끌고 가는 느낌이랄까요? 그러니 자세는 당연히 안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코치는 자세를 계속 지적했습니다. 제가 볼 때는 자세를 자꾸 바로잡으려고 할 게 아니라 가벼운 배트로 바꿔주면 문제가 금방 해결될 것 같은데 코치의 말이 어린 아이의 몸에 스며들지를 못하고 허공에 흩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또 저의 머리를 갸우뚱하게 만든 장면은 이런 말을 들을 때였습니다.
“팔이 먼저 나오잖아! 허리가 먼저 돌아야 한다니까!”
“앞다리를 고정시켜야지.”
메카닉의 측면에서는 대체로 맞는 말입니다. 지면으로부터 시작해 팔로 이어지는 키네마틱 시퀀스를 주문하는 말이죠. 그래야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자신의 주문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선수를 보며 코치의 목소리가 점점 커집니다. 코치의 못마땅한 표정과 살짝 화가 난듯한 목소리를 들으며 어린 선수는 몸이 더욱 경직되는 게 멀리서 보기에도 감지가 됩니다. 코치도 답답하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문득 이런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허리를 먼저 돌리라고 하면 돌아지는 건가? 저한테는 마치 그 말이 의사가 감기를 고치러 온 환자한테 “빨리 감기에서 나으세요” 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몇 번 같은 처방을 해서 잘 통하지 않으면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 봐야 하지 않나?

저의 아들이 비슷한 일을 겪으며 그런 의문은 한층 증폭되었습니다. 아들이 중학교 2학년 무렵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 나이 또래 남자 아이들이 키는 호리호리해도 힘은 별로 없잖아요?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시기라 관절도 다소 불안정하구요. 근육의 양도 턱 없이 부족하니 투구 동작이든 타격 동작이든 영 폼이 안 납니다. 하지만 지도자나 부모들은 매일 보는 프로 선수들의 세련된 동작과 비교하며 어린 선수들을 다그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도 부끄럽지만 그랬고요. 저의 아들도 그 당시에 늘 지적받는 게 타격을 할 때든 피칭을 할 때든 앞다리가 주저앉는다는 거였습니다. 코치도 볼 때마다 고치라고 하고, 저 역시 가끔 경기장에서 공을 던지거나 배트를 휘두르는 모습을 볼 때마다 늘 불만이었습니다. 그래서 한 번은 그걸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당시에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들이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은 똑똑히 남아 있습니다.
“아빠. 나도 그러고 싶은데 잘 안 돼.”
그 말을 듣고 미안한 마음이 커졌습니다. 또 말과 움직임 사이의 관계에 대한 궁금증도 더 커졌습니다. 선수도 코치의 말대로 하고 싶은데 못하고 있는 거라면? 허리를 먼저 돌리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사정이 있는 거라면? 앞다리를 고정시키라고 그저 말만 하지 않고 앞다리를 고정시킬 수 있는 연습 방법은 없을까? 이런 질문을 품고 자료들을 찾아보니 스포츠 코칭과 운동 학습 분야에 그런 코칭 언어에 관한 연구와 관련 사례들이 무척 많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걸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하고 있는 코치들도 종목을 가리지 않고 많았습니다.

또 제가 직접 경험한 다른 사례입니다. 이것 역시 제가 이따금씩 이불킥을 하는 실수담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아들의 경기를 보다가 제가 입을 잘못 털어서 경기를 망쳐버린 케이스입니다. 나주에서 어느 대회의 결승전이었습니다. 1점을 뒤지고 있었고, 6회말 마지막 공격이었습니다. 2아웃이 된 상황에서 마지막 타자로 아들이 들어섰습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아들은 다음 타자로 대기하고 있던 친구에게 “야. 어떡할까?” 라고 물어보았다고 합니다. 그때 친구가 “뭘 어떡해? 홈런치고 동점 만들어야지.” 라고 말해주었다고 합니다. 아들은 그 말을 들으니 왠지 자신감도 생기고 기분이 좋아졌다고 합니다. 진짜 한방 넘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그래서 오늘 경기의 히어로가 될 것 같은 기분에 흥분되었다고 나중에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관중석에서 귀에 익숙한 소리가 들리더랍니다.
“홈런치려고 하면 안돼!”
제 입에서 나온 그 말이 모든 걸 바꿔놓았습니다. 그 말을 딱 듣는 순간 아이의 머릿속에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홈런을 치고 싶은데 아빠가 홈런 치려고 하면 안 된다고 하네? 아마 생각이 복잡해지면서 몸도 확 움츠러들지 않았을까요? 제가 괜히 뭔가 조언을 해준답시고 내던진 한마디가 아이의 자신감을 순식간에 앗아가면서 몸도 덩달아 긴장시켜버린 겁니다. 타격의 결과도 그런 머리에서의 갈등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결국 방망이를 시원하게 돌리지 못하고, 그럭저럭 잘 맞긴 했는데 그렇다고 힘 있게 때리지는 못한 유격수 직선타로 아웃되며 경기가 끝나고 말았습니다.

저는 다행히 그 이후로 경기장에서 응원을 빙자해 쓸데없는 소리를 지르는 걸 멈췄습니다만 유소년 경기장에 가보면 여전히 그러는 분들이 많습니다. 벤치에서 고함을 치는 지도자 분들도 많고요. 물론 모든 경기 중 코칭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플레이에 도움이 되는 말을 잘 준비해서 시의적절하고 간결하게 전달하는 일도 경기에서 코치가 해야 할 중요한 역할 중 하나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저는 그런 모습이 과도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도자와 일부 부모들이 충동적으로 그렇게 고함을 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선수가 아닌 소리를 지르는 그 분의 불안을 느낍니다. 자신의 불안을 달래려고, 자신을 휘감고 있는 불안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서 하는 말처럼 들립니다.
앞서 말씀드린 선수가 코치의 지도를 잘 따라오지 못하는 모습이나 제가 경기장에서 소리를 질러 아들의 경기를 망쳐버린 사례는 언듯 보면 다른 케이스 같지만 큰 맥락에서 보면 의미가 통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과 움직임의 관계라고 할 수도 있고, 주로 언어의 형태로 일어나는 선수 내면의 생각이 움직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그리고 바로 그 생각을 일으키는 요인은 무엇인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지금 이렇게 서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만, 말하는 행동에도 제 몸의 여러 기능이 작동하며 움직임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머리에서는 다음에 무슨 말을 할지 앞에서 사용한 단어에 맞추어 빛의 속도로 다음 단어를 선택하고 있을 겁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성대 주변 근육들도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뇌를 포함해 여러 근육과 조직들의 코디네이션이 작용하고 있는 움직임이 말하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하기 역시 운동 내지는 움직임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듯 합니다. 듣기도 비슷합니다. 귀 주변과 뇌 안의 여러 청각 기관들이 보이지 않는 협업을 하면서 저의 이야기를 따라 오고 계십니다. 크게 애쓰지 않고요. 애쓰지 않는다는 게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어떻게 보면 여러분이나 저나 말하고 듣는 움직임만큼은 제법 잘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아주 높은 수준의 말하기, 듣기 기술을 가지고 있는 셈이죠. 그렇다면 우리는 한국어를 이렇게 편안하게 말하고 듣는 법을 어떻게 배웠을까요? 자신에게 말하기 듣기 기술을 가르친 코치가 있었나요? 아마 단 한 분도 그렇게 가르쳐준 사람은 없었을 겁니다. 물론 우리는 기억을 못하지만 아주 어릴 때 부모님께서 “이거는 사과야. 이거는 고양이야.” 하면서 알려준 것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어떤 부모도 이 세상 모든 사물과 생각들을 말과 글이라는 형태로 가르쳐줄 수는 없습니다. 결국 우리는 다양한 환경 속에서 여러 대상들을 직접, 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한국어를 말하고 듣는 능력을 익히게 되었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합니다. 지금 인공지능을 학습시키는 방식이 이와 비슷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말하기와 듣기를 배운 과정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직접 경험한 최고 수준의 운동 기술을 배우는데 사용한 방식을 스포츠 기술을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에서는 별로 적용하고 있지 않다는 의문 때문입니다. 저는 특히 코치분들이 선수를 지도하는 모습에서 저희가 외국어 공부에 접근하는 모습이 자꾸 오버랩됩니다. 우리나라가 영어 공부에 투입하는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돈은 정말 엄청납니다. 저희 나이대의 사람들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영어를 처음 공부하기 시작했는데요. 요즘은 2,3살부터 영어 단어와 소리에 노출시키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투입한 인풋만큼 영어를 잘 하는지를 들여다 보면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특히 말하기와 듣기 기술의 가성비가 무척 떨어집니다. 제가 바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들 제가 번역도 하고 미국 코치들도 불러서 행사도 하고 그러니까 영어를 아주 잘 하는 줄 압니다. 물론 대한민국 사람들 평균을 내면 상위 10% 정도의 영어 실력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정말 벽을 느끼는 지점은, 영어를 말하고 듣는 능력을 지금 수준에서 더 발전시키는 게 무척 힘들다는 겁니다. 저는 미드나 헐리우드 영화도 자막 없이는 50%도 이해를 못합니다. 현지인과의 대화도 세네 문장을 이어서 말하기가 버겁습니다. 상대가 천천히 말해주지 않으면 말하는 것도 70% 수준 밖에는 알아듣지 못합니다. 원서를 읽는 게 그나마 가장 나은데 3,4페이지를 읽어도 굉장히 눈과 뇌가 피곤해집니다. 그 이유는 제가 영어를 무의식적 학습, 암묵적 학습이 아닌 의식적 학습, 명시적 학습 형태로 공부를 해왔기 때문입니다.
저는 처음 영어를 배우기 시작할 때 영어 사전과 문법책을 가지고 공부를 시작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apple은 사과, 명사. 1형식 명사 뒤에는 동사, 3형식은 명사 동사 목적어. 이런 식으로 영어 단어와 문장 구조들을 익혀나갔습니다. How are you? Fine. Thank you. And you. Where are my socks? 쉬운 문장들을 통째로 외우기도 했구요. 이런 틀이 영어를 처음 배우기 시작할 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틀이나 패턴이 있을 때 더 잘 기억합니다. 전화번호도 10자리 숫자가 쭉 늘어져 있을 때보다 4자리 단위로 대쉬(-)를 하나 넣어주면 기억하기가 훨씬 좋지 않습니까? 일정한 수준의 틀이나 규칙은 배움을 가속화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저 역시 영어를 처음 배울 때 그런 틀에 맞추어 머리에 차곡차곡 단어와 문법 지식을 쌓는 작업들이 영어 실력을 키워나가는데 좋은 발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식의 영어 학습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특히, 말하기와 듣기 능력을 키우는데 어떻게 보면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 문제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까 ‘좋아’ 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fine이라는 단어를 제가 말했습니다. fine = 좋아. nice나 good과 비슷한 뜻이지. 이런 식으로 저는 단어를 학습했고 그 의미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의식적 학습, 명시적 학습 방식으로 fine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학습해 온 것이죠. 그런데 저같은 사람은 ‘fine = 좋아’ 이 틀에서 살짝 벗어나는 문장을 접하면 혼란에 빠집니다. 대화를 나누다가 아니면 미드를 보다가 ‘I was fined $1000’라는 표현을 접하게 되면 순간적으로 뇌가 얼어붙게 됩니다.
fine에는 ‘좋다’라는 뜻 외에 벌금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 문장은 1000달러의 벌금을 맞았다는 뜻입니다. 사실 모든 단어는 어떤 하나의 고유한 뜻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러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말 사과가 ‘먹는’ 사과와 ‘미안하다’는 뜻으로 함께 사용되듯이 말이죠. 하지만 우리는 그걸 일일이 노트에 적으며 배우지는 않았습니다. 여러 다양한 상황을 겪으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알게 되었을 뿐이죠. 우리는 무의식적 학습, 암묵적 학습을 통해 사과가 어떤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지 크게 에너지를 쓰지 않고 문맥에 비추어 바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fine을 ‘좋다’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라고 주로 ‘의식적인’ 차원에서 학습을 했기 때문에 ‘I was fined $1000’ 이런 문장을 들으면 ‘응? 무슨 뜻이지?’ 하면서 순간(!) 뇌가 멈춥니다. 저의 의도와 관계 없이 멈춥니다. 뇌 정지 상태가 되는 것이죠. 심지어 지금은 이 단어가 벌금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데도(!) 뇌가 멈춥니다. 문장 구조와 문맥 속에서 자연스럽게 단어의 뜻을 파악하는 훈련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는 사이에 5~10초 동안 상대는 다음 대화를 이어나갑니다. 하지만 저는 이미 뇌가 얼어붙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뒤에 상대가 무슨 말을 했는지 하나도 들리지 않습니다.
영어를 저처럼 단어와 문법 중심으로 탄탄히(!) 배울 수록, 다시 말해 의식적 학습, 명시적 학습의 경험이 대부분일 수록 이런 한계를 뛰어넘기가 무척 힘이 듭니다. 어떤 틀이든 무언가를 새로 배우는 단계에서는 학습에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언젠가 그 틀을 벗어나야 하는 순간에 엄청난 족쇄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영어 문장을 읽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바로 읽기를 멈추고 사전을 찾아 뜻을 확인하고 빈노트에 쓰면서 외웠습니다. 그렇게 아는 단어와 숙어의 양은 점점 늘어났습니다. 그 결과 저는 수능의 아주 복잡하고 긴 문장을 읽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 왠만한 원서를 읽고 번역까지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습니다. 하지만 영어로 대화를 나누다가 어느 한 단어만 모르는 단어가 나와도, 책을 읽다가 조금 낯선 문장이 나타나면 일단 뇌가 멈추는 습관이 뿌리깊게 자리 잡았습니다.

짐 콜린스의 아주 유명한 책이죠. 이 책에는 많은 분들이 자주 언급하는 문장이 나옵니다. 어쩌면 제목보다 이 문장이 더 유명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은 것은 위대한 것의 적이다.” 이 말은 보통 과거의 성공 경험이 미래의 성공에 장애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그럭저럭 좋은 수준으로 가는 방법과 탁월한 수준으로 가는 방법은 달라야 한다는 의미로도 쓰이구요. 저는 이 말이 운동 학습이나 선수 코칭에도 시사하는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어릴 때 영어를 공부한 방식은 Good 수준으로 가기 위한 괜찮은 수단이었습니다. 그러한 의식적 학습 방식은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에게 만족감을 줍니다. ‘오늘은 단어를 100개 더 외웠네. 오늘은 스윙에 힘을 싣는 방법을 제대로 배웠어.’ 이런 생각으로 뿌듯함을 느끼게 해줍니다. 계속 공부나 훈련을 해나가도록 만드는 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하구요. 그런데 그 방식은 Great 수준으로 가는 데는 적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Good 수준으로 만든 방식을 더(!) 열심히 한다고 해서 Great 수준이 된다고 보장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아니. 어쩌면 Good 수준으로 가는 과정에서의 경험과 기억으로 인해 Great 수준으로 더이상 발전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가 비단 영어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모든 학문 분야와 스포츠의 세계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많은 종목의 선수들이 20대 이전에는 나름 국제 경쟁력을 가지다가 성인 레벨이 되어서는 정체되는 모습을 공통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선형적인linear 발전에 익숙합니다. A단계가 완성되면 다음으로 B, B가 갖추어지면 다음으로 C, 이렇게 선수의 기술이나 능력이 계단식으로,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Great 수준을 지향하는 코치라면 이런 전제를 맹목적으로 따랐을 때의 위험을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말 정말 최고 수준의 운동 기술은 그런 단계를 따라 만들어 지지 않을 가능성이 무척 높다는 겁니다. 특히 Good에서 Great 수준으로 넘어가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 저의 주장입니다. 제가 가능성이나 주장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저도 아직 100% 확신은 없기 때문입니다.
fine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수준이 있습니다.
fine을 ‘좋아. 나이스. 굿’으로 알고 있는 수준이 있습니다. Not Bad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I was fined $1000’ 이 문장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는 수준이 있습니다. 나름 Good한 수준이겠죠.
‘I was fined $1000’ 이 문장을 읽거나 듣고 ‘알고 있다는 생각’도 없이 그냥 이해하고 넘어가는 최고 레벨의 수준이 있습니다. Great한 수준입니다.
여기 계신 프로님들이 누구를 지도하는 지에 따라 접근하는 방식도 달라질 겁니다. 그저 fine을 ‘좋아. 나이스. 굿’으로 이해하는 수준만 만들어줘도 만족하는 일반인 골퍼라면 거기에 맞는 교습을 해주시면 될 겁니다. 좋은 폼으로 인스타그램에 멋진 인증샷을 남기고 싶은 분이라면 그런 욕구에 반응해 주시면 되겠죠. 그런데 만약 Great의 레벨로 발전하기를 바라는 선수, 특히 주니어 선수를 지도하고 계시다면 Good의 결과를 얻기 위해 기울인 오랜 시간의 노력이 Great로 가는 과정에서는 오히려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겁니다. 좋은 스윙을 만들기 위해 코치가 기울인 많은 노력이 억울하게도 어느 시점부터 선수의 경기를 망칠 수 있다는 겁니다. 좋은 드라이브샷과 어프로치샷, 퍼팅 동작을 만들기 위한 과정에서 선수의 기억에 어떤 단어나 문장이 입력되었는지에 따라 결정적인 순간에 선수의 몸과 머리가 얼어붙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선수가 자신이 배운 것을 경기장에서 온전히 펼쳐보이기를 바란다면 ‘무엇을’ 만큼이나 ‘어떻게’에도 코치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많은 코치분들이 이 문제를 멘탈 코치의 역할 내지는 선수 개인의 기질이나 성격으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셀프 토크, 자기 확언, 뭐라고 이름을 붙이든 관계 없이, 선수가 클러치 상황에서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나 주문을 자신이 하는 코칭과 무관한 요소로 분리시켜 바라보곤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늘 강연의 제목처럼 선수가 결정적인 상황에서 떠올리는 생각은 코치로부터 나온 말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모든 아웃풋에는 인풋이 있기 마련입니다. 선수는 결국 저장된 정보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선수는 자신의 운동과 관련해서 누구로부터 가장 많은 말을 듣고 있나요? 바로 코치입니다.
실제로 연구로서 이를 증명한 사례도 있습니다. 뉴질랜드의 리치 마스터스 박사는 선수가 압박감을 느끼는 상황에서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이유를 ‘재투자 이론Reinvestment Theory’으로 설명합니다. 선수가 처음에 어떤 방식으로 기술을 배웠는지에 따라 압박감을 느끼는 상황에서의 경기력이 달라진다는 개념입니다. 명시적 교습(의식적 학습) 방식으로 기술을 익힌 선수는 압박감이 큰 상황을 만나면 자신도 모르게(!) 코치가 알려준 방식대로만 움직이려고 한다는 겁니다. 저는 마스터스 박사가 곁들여 소개한 다음 이야기가 무척 와닿았습니다. 이름도 골프를 떠올리게 하는 마스터스 박사는 선수들의 이런 무의식적 행동을 어린 아이가 늘 자신의 곁에 있던 인형이나 담요를 움켜쥐는 애착행동에 비유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움직여야 해.” 코치로부터 전해 들은 말이 뇌리에 강하게 박혀있을 수록 선수는 긴박한 상황에서 코치의 주문대로 움직이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한 없이 강한 존재이기도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지극히 나약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무언가에 의지하고 싶은 마음은 자신의 무의식 어딘가를 뒤져서 붙잡고 싶은 말을 끄집어내게 됩니다. 바로 그때 어떤 말을 건져 내서 자신의 생각으로 삼느냐에 따라 선수의 운명은 갈라집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마지막 질문이 들어갑니다. 아까 제가 드린 질문에 여러 의견을 주셨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무 생각 없이 치면 좋겠다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하늘의 구름을 본다는 아이디어로 재밌었습니다. 인생역전이라고 답을 해주신 분! 최고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분들이 신체 동작에 신경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적어주셨습니다. 그냥 하던 대로 타겟을 보고 무심의 상태에서 플레이를 하길 바란다고 저는 읽었습니다. 그렇다면 중요한 질문은 이겁니다. 그걸 위해 평소에 어떤 훈련을 하고 계신가요? 바로 그 마음 상태로 18번홀의 마지막 퍼팅을 하기 위해 무엇을 하고 계신가요? 내가 선수에게 자주 사용하는 단어나 문장은 그럼 바람과 매칭이 되나요? 답을 드리고 마쳐야 하는데 질문으로 이 시간을 끝내게 되어서 무척 죄송합니다. 저의 이야기를 통해 프로님들이 선수들을 지도하며 자주 하는 말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오늘 강연을 마치겠습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