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조언, 다른 반응
21세기북스에서 발간한 <일의 99%는 피드백이다>에는 어느 아빠가 두 딸에게 배팅연습을 시키는 장면이 나옵니다. 코칭언어와 관련하여 의미있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 소개합니다.
따사로운 봄날, 어느 토요일.
아빠는 배팅연습을 시켜줄 요량으로 쌍둥이 딸, 애니와 엘시를 야구장에 데려간다. 아빠는 아이들에게 자세를 어떻게 바로잡고 공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면서 스윙 높이는 유지하는지 보여준다.
애니는 배팅연습이 매우 즐겁다. 애니는 깔끔하게 정돈된 잔디 위에서 아빠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야구방망이를 한 차례 휘두를 때마다 실력이 조금씩 좋아지는 것 같다. 반대로 엘시는 침울한 모습이다. 엘시는 야구장 울타리에 등을 기대고 주저않아, 야구방망이를 언제 휘둘러야 할지 적절한 타이밍을 알려줄 테니 타석에 서보라고 회유하는 아빠를 노려보며 불평한다.
“아빠는 내가 잘 못한다고 생각하잖아요. 아빠는 항상 나를 비난해요!”
아빠는 엘시의 말을 바로잡는다. “아빠는 널 비난하지 않아. 엘시, 네가 더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거야.”
“지금도 그러잖아요.” 엘시가 투덜거린다. “아빠는 내가 충분히 잘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잖아요.”
화가 잔뜩 난 엘시가 쿵쿵거리며 밖으로 걸어가자 야구방망이가 땅에 끌리며 달그락 소리를 낸다.
아빠는 한 명, 반응은 두 가지
아빠는 당황스럽다. 아빠는 자신이 쌍둥이 딸들을 똑같이 대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똑같은 피드백을 받은 두 딸은 정반대의 반응을 보인다. 한 아이는 아빠의 조언을 토대로 기량을 닦고 자신감을 키우는 등 아빠가 의도한 대로 조언을 받아들인다. 반면 다른 아이는 좌절감에 빠진 채 시도 자체를 거부하고 심지어 아빠가 의견을 내놓기만 해도 화를 낸다.
사실 아빠는 두 아이를 ‘똑같이’ 대하고 있다. 똑같은 말투로 똑같은 충고를 한다. 외야석에 앉아 아빠와 두 아이를 지켜본다면 차이를 전혀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두 아이가 타석에 서서 생각하는 방식에는 극명한 차이가 있다. 두 아이의 귀에 아빠의 말은 다르게 들린다. 애니에게 아빠의 조언은 스트라이크 존 한가운데로 날아 들어오는 커다란 소프트볼 공과 같지만 엘시에게 아빠의 조언은 자신의 몸을 향해 인정사정없이 날아드는 공과 같다.
이것이 바로 피드백을 받는 사람이 경험하는 역설적인 측면 중 하나다. 우리는 이따금씩 애니와 같이 반응한다. 감사하고, 열망하고, 활력을 느낀다. 하지만 엘시처럼 반응할 때도 있다. 상처받고 방어하고 분개하는 것이다. 피드백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 피드백을 주는 사람의 전달 기술이나 피드백의 내용에 따라 항상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실 피드백에 대한 우리의 반응을 결정하는 것은 ‘상대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와 ‘상대가 지금 내게 어떤 유형의 피드백을 주고 있는 것처럼 느끼는가’다.
(중략)
아빠는 쌍둥이 딸들에게 자신의 의사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아빠는 조언을 하고자 하는 자신의 의도를 정확하게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애니는 아빠가 의도한 대로 아빠의 말을 조언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엘시는 아빠의 말을 평가로 받아들였다.
“아빠는 내가 잘 못한다고 생각하잖아요. 내가 충분히 잘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잖아요.”
엘시는 아빠가 자신이 잘하지 못한다고 생각할까봐 걱정했다.
(중략)
엘시는 왜 조언을 평가로 받아들일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어쩌면 아빠가 자신과 애니를 은연중에 비교한다고 느낄 수도 있고, 자신의 운동능력에 자신감이 없어서일 수도 있으며, 아빠가 항상 공정하지는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쩌면 일주일 내내 아빠와 함께할 시간을 고대하긴 했으나 엘시가 진심으로 원한 것은 야구가 아닌 다른 것이었을지 모른다. 혹은 단순히 잠을 잘 자지 못했거나 아침식사를 제대로 못했을 수도 있다.
엘시와 아빠 사이에 무슨 문제가 있건, 의사 전달이 이처럼 잘못되는 데는 구조적인 원인도 있다. 즉 모든 조언에는 어느 정도 평가가 포함돼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개선에 도움이 될거야’라는 조언의 메시지에는 ‘지금까지는 네가 해낼 수 있는 최대치만큼 잘해내지 못했어’라는 평가의 메시지가 들어있는 것이다.
아빠는 평가의 말을 피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아빠는 “나는 너희 둘 다 평가하고 있어. 애니, 너는 몸을 잘 움직이고 있구나. 엘시, 넌 그렇지 않아”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런 식의 표현은 명백한 평가다. 그런데도 조언에는 항상 평가의 의미가 내포돼 있기 때문에 평가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애니에게는 이 사실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애니는 아빠의 말을 조언으로 여길 뿐 평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반면 엘시는 아빠의 말 속에 오직 자신을 평가하는 내용만이 담겨있다고 생각할 뿐 다른 의미로는 받아들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