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칭언어

“오늘 하고 싶은게 뭐야?”

신시내티 레즈의 피칭 디렉터인 데릭 존슨 코치는 연습을 시작하기 전에 선수에게 이렇게 묻는다.

“오늘 하고 싶은게 뭐야?”

이런 질문을 받고 자신이 무엇을 연습하려고 하는지를 분명히 답하는 선수도 있지만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하면서 머뭇거리는 선수도 있다. 그런 순간을 데릭 존슨 코치는 ‘가르쳐야 할 기회’로 여긴다. 의도적인 연습이 왜 중요한지를 가르칠 수 있는 기회다.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연습을 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설명해 주고 같은 질문을 또 던진다. “자. 그럼 오늘 하고 싶은게 뭐야?” 코치의 질문에 답을 하며 선수는 스스로 연습의 목적을 생각해 본다.

데릭 존슨 코치는 모든 연습을 시작하기 전에 선수들에게 질문을 던진다고 한다. 선수가 분명한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연습에 참여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의도가 분명하지 않으면 이것저것 다 신경쓰느라, 아니면 아무 것도 신경쓰지 않으면서 시간만 보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불펜피칭을 시작하기 전에 존슨 코치는 오늘 무슨 연습을 할 것인지를 묻는다. 그렇게 선수와의 대화를 통해 연습의 의도를 분명하게 정하는 작업을 한다. 피칭메카닉에 신경을 쓰며 공을 던질 것인지, 메카닉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고 공의 움직임에만 초점을 맞출 것인지, 아니면 손의 감각에 집중하는 커맨드 연습을 할 것인지 등을 선수 스스로 정하게 한다. 그렇게 연습의 목적을 분명히 정했다면 그에 맞추어 연습환경도 살짝 조정한다.

피칭메카닉과 몸의 느낌에 초점을 맞추어 연습을 하기로 했다면 공이 원하는 지점에 제대로 날아가는지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아예 타겟이나 포수가 없이 가까운 거리에 스크린을 세워놓고 공을 던지기도 한다. 반대로 커맨드나 공의 움직임에 집중하고자 한다면 피칭동작이나 몸의 느낌에는 크게 연연해 하지 않는다. 오로지 공이 원하는 로케이션으로 들어가는지를 유심히 관찰한다.

코치의 입장에서 선수가 연습하길 원하는 것들도 분명 있지만 그것보다는 선수가 스스로 정한 목적이 더 중요하다고 존슨 코치는 여긴다. 그래서 자신이 생각한 방향과 어긋나 보이는 연습을 선수가 원할 때도 그것을 그대로 존중해 준다. 가끔은 자신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선수가 말하는 경우도 있는데 선수로부터 배우게 되는 순간이라고 존슨 코치는 말한다. 선수로부터 배우는 자세! 뛰어난 코치들이 보여주는 특징이다.

연습 전에 나누는 이런 짧은 대화는 선수에게 연습의 목적과 의도를 심어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면서 선수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파악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많은 베테랑 코치들은 연습과 경기 전에 가벼운 대화로 선수의 생각과 감정을 읽기 위한 저마다의 루틴을 실천하고 있다.

지금은 은퇴를 하신 레이 시어리지 코치 역시 선수들이 연습을 시작할 때 늘 같은 질문을 던졌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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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느낌이 어때?”

시어리지 코치는 이 질문이 무척 고리타분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선수 입장에서는 뭐라고 답을 해야 할 지 머리가 멍(!)해 질 수도 있는 질문이다. 몸이 어떻다는 건지, 요즘 생활이 어떻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중요한 포인트는 시어리지 코치가 던진 그 질문의 내용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고 나서 시어리지 코치가 보여주는 행동이다. 시어리지 코치가 던진 질문은 지극히 평범하지만 대답을 기다리는 그의 태도는 매우 특별하다. 그는 자신의 질문에 선수가 답하는 모습을 보며 무언가를 찾아내곤 한다. 이야기를 하는 선수의 말이나 몸짓에서 미묘한 느낌을 감지하면 시어리지 코치는 바늘을 문 물고기를 상대하는 노련한 어부처럼 한발짝 더 선수에게 다가가 마음을 집중한다.

“뭐든 좋아. 무슨 문제 있어?”

이렇게 또다시 물으며 선수에게 순수한 호기심을 드러낸다. 시어리지 코치가 보여주는 관심과 진정성 앞에서 선수들은 경기 안팎에서 겪고 있는 다양한 고민거리들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판단하지 않는 마음으로 선수를 유심히 관찰하는 것이 코칭의 시작이라는 점을 이상훈 해설위원도 한 미디어와의 인터뷰에서 말한 적이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선수들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코치 앞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몸에 문제가 있어도, 가정이나 사생활 문제로 머릿속이 복잡한 상황이라도 그것들을 코치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상훈 해설위원은 그래서 선수가 연습을 하러 나오는 모습이나 캐치볼을 하는 모습 등을 유심히 관찰하며 선수의 상태를 읽으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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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위원은 운동을 하러 나오는 걸음걸이,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는 모습 등에서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올 때가 있다고 한다. 아니면 불펜에서 오늘 공을 몇 개 던질건지를 물었더니 선수가 평소보다 적게 던지겠다고 답했다면 이것 역시 민감하게 받아들여야 할 순간이라는 것이다. 한 번은 그렇게 말한 선수가 있어서 이상훈 위원이 어디가 안좋은지 확인을 해보니 손가락의 피부가 벗겨져 있었다고 한다. 손가락에 문제가 있다고 말을 하면 야단을 맞을까봐, 아니면 나약한 선수로 평가받을까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못한 것이다. 이상훈 위원은 바로 피칭을 중단하고 트레이너의 조치를 받고 선수를 쉬도록 했다고 한다.

시어러지 코치는 공감과 경청을 바탕으로 선수를 대하는 태도를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배웠다고 한다. 그리고 고장난 차를 다루듯 자신을 대했던 코치들을 반면교사로 삼았다. 시어리지 코치는 자신의 의견은 고려하지 않고 “이렇게 바꿔. 저렇게 바꿔.” 하면서 자신의 동작을 고치려 한 코치들로 인해 선수 시절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일방적인 지시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렸던 아픈 경험을 선수들이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배우는 사람은 가르치는 사람의 지식이나 경험보다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 시어리지 코치의 도움으로 커리어를 완전히 탈바꿈한 찰리 모튼 선수는 시어리지 코치와 보낸 시간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메카닉의 달인이라고 해도 그것을 말로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어느 누구와도 그렇게 할 수는 없을 거에요. 우리는 모두 다른 개성과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어리지 코치는 늘 친절하세요. 공감 그리고 사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를 대하십니다. 정말 훌륭한 코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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