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난로에 던진 땔감 (이딴게 내 응원팀이라니 10편)

<지난 1월 4일,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대회에 나설 대한민국 대표팀 30인 최종 명단이 발표됐다.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양대 왼손 에이스, 베테랑 김광현과 양현종이 이름을 올린 것을 보고 마음이 복잡했다. 누군가는 ‘이제 2008년생이 아이돌을 하는 시대에 아직도 2008 베이징올림픽 대표팀 멤버가 국가대표 에이스를 하느냐’며 탄식했다. (2008년생이 아이돌을 하는 것이 괜찮은 사회인지의 여부는 일단 차치하자.) 물론 여전히 그들은 좋은 투수고, 나 역시 그 기량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사키 로키(2001년생), 이마나가 쇼타(1993년생), 도고 쇼세이(2000년생) 등 WBC 일본 대표팀 선발진 명단과 비교해 보면 적어도 확실히 투수 쪽에서는 리그를 대표하는 에이스라 부를 만한 새로운 스타가 안 나온 지 오래 됐다는 씁쓸함을 곱씹게 된다.>

지난 회차 <이딴 게 내 응원팀이라니> 연재분을 작업하면서 글의 전체 흐름에 잘 들어맞지 않아 최종적으로 본문에 넣지는 않았던 문단이다. 리그 규모에 비해서 에이스급 선수층이 너무 얇다는 위기감을 느끼며 썼는데 이 단락을 보다 정교하게 뒷받침하려면 별도의 구조적이고 심층적인 진단이 필요할 것 같아 삭제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베테랑 추신수(SSG)가 미주 지역 라디오 인터뷰에서 야구 대표팀 세대 교체에 대해 비슷한 의견을 밝히며 야구계에 한바탕 논란이 일었다. 어린 선수들을 많이 뽑아야 한다면서 “언제까지 김광현 양현종이냐.” 처럼 수위 높은 표현을 사용한 것, 그리고 2022시즌 리그 정상급 성적을 거뒀지만 학교폭력 전력으로 대표팀 선발에서 제외된 안우진(키움)에 대해 “한국에서는 용서가 쉽지 않은 것 같다.”며 이렇게 불합리하게 피해를 보고 있는 후배가 있으면 선배로서 발 벗고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논란의 불씨를 키웠다.

역풍은 거셌다. 추신수의 발언은 조목조목 반박됐다. 인신공격적인 반응도 적지 않았다. “그럼 본인은 나이가 몇이야.” 라는 유명한 야구 원로의 신경질적인 반응부터 ‘추신수에게 WBC 감독을 맡겨보자’는 논조의 기사들 또한 잇따랐다. 안우진 옹호 발언의 파장 역시 컸는데, 거듭되는 ‘2차 가해’ 논란 속에 안우진 본인이 재차 사과를 하기도 했다. 추신수 본인의 과거 음주운전 전력 또한 다시 들춰졌다.

일련의 과정들을 지켜보면서 다시금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추신수의 발언과 그가 촉발한 논쟁의 양상 모두에 대해서다. 나 역시 추신수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발언의 형식도 한국 프로야구에 대한 존중이 있었다면, 해외 언론이 아닌 국내 언론과의 정식 인터뷰를 통해 밝히는 편이 더욱 적절했으리라 생각한다. 일본 문화 전반을 지배하는 특유의 ‘근성론’에 대해 개인 SNS와 일본 현지 언론 인터뷰를 통해 거듭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일본프로야구 문화의 구태와 비합리성에 대해 비판하는 다르빗슈 유(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사례와 비교해 본다면 추신수의 사례는 더욱 아쉽다. 주장의 깊이와 형식 모두 그렇다. 근본적인 원인을 짚기보다는 피상적인 현상을 가리키는 데 머물렀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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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추신수의 발언이 전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대표팀 세대교체’ 주장의 경우, 추신수가 발언하기 이전에도 비슷한 위기의식에 대한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던 것은 사실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언론은 그가 촉발시킨 논쟁을 계기로 보다 구조적인 문제에 심층적으로 접근해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왜 KBO리그에서는 젊은 선발투수들이 에이스급으로 성장하지 못하는가?” “어째서 KBO리그에는 국내파 강속구 선발투수가 드물어졌는가?” 라는 식으로 질문을 보다 구체적으로 바꾸어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조금씩 합리적으로 바뀌고 있다지만 여전히 강력하게 권위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학원스포츠와 프로스포츠의 경직성에 대해 이야기가 뻗어나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안우진 건도 마찬가지다. 가해자 개인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여전히 폭력이 지배하고 있는 스포츠 문화, 나아가 한국사회 전반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어질 수 있지 않았을까.

스토브리그(stove league), 비시즌 기간 동안 난로(스토브stove)를 둘러싸고 팬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는 데서 생긴 표현이다. 추신수가 난로에 던진 땔감으로 KBO리그는 뜨겁게 불탔다. 이렇게 만들어진 열기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었으며, 그럼에도 무엇을 하지 않았을까. 차디찬 겨울을 지나 새로운 야구가 기다리는 봄을 앞두고 다시 묻게 되는 질문이다.

작가 소개 : 구슬
KBO리그와 히어로즈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언제 망하는지 두고보자며 이를 갈게 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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