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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의 괴물과 당당히 맞서 싸워라

‘난 두렵지 않아’ 하면서 애써 외면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군요. 두려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하라고 합니다.

원문을 보시려면 http://news.nate.com/view/20130527n09518

마음 속의 괴물과 당당히 맞서 싸워라

중앙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한덕현 교수

‘각본 없는 드라마’로 불리는 스포츠에는 인간의 희로애락이 모두 녹아 있다. 뭉클한 감동과 환희가 있는가 하면 뜨거운 눈물도 있다. 한계를 뛰어넘는 아름다운 도전에 나선 운동선수들은 인간 승리의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우리에게 선사한다.

중앙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한덕현 교수는 ‘스포츠’야말로 인간의 정신적 측면을 설명하기에 가장 적당하다고 본다. 성적 순으로 평가받은 운동선수들의 냉혹한 현실은 치열한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과 너무도 닮아있어서다. 스포츠광인 한 교수가 지난 20여년 동안 스포츠와 정신건강의학을 접목하는 일에 매진해온 이유다.

한덕현 교수는 현대인의 마음 속에는 살아서 꿈틀거리는 ‘괴물’이 있다고 말한다.
경쟁 속에서 매일 위험한 줄타기를 하는 직장인들, 수십 통의 입사지원서를 쓰면서 낙담해 있는 청년들, 며칠이고 컴퓨터 게임에 빠져 지내다 결국 심리 치료를 받는 청소년들, 명절 때마다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주부 등등. 스포츠 정신의학 전문의이자 LG트윈스프로야구단 심리주치의를 맡고 있는 한 교수가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숱한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나누고 내린 결론이다.
이 괴물은 평소에는 조용히 숨어 있다가 뭔가 중요한 일을 하려고 하는 결정적인 순간에 불쑥 나타나 사람들을 집어삼킨다. 골대 앞에만 가면 작아지는 프로축구 공격수, 쟁쟁한 실력을 갖추고도 프로골프테스트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시는 세미프로골퍼, 스펙에 대한 열등감으로 중요한 회사 프리젠테이션 때마다 망치기 일쑤인 통신사 경력직 등등이 이런 사례들이란다.

의학적으로 두려움을 ‘공포’라고 한다. 그런데 두려움은 일어난 사건의 크기와 상관없이 공포심을 키우고 사람을 작게 만든다. 공포심을 물리치고 자신감을 가지려면 두려움의 실체를 알아야 한다. 한 교수가 상담 때마다 “당신은 누구인가요?”라고 질문을 던지는 이유다.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과정은 불안, 공포증, 외로움, 우울증 등 현대인을 괴롭히는 정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초의 실마리가 된다는 게 한 교수 설명이다.

한 교수는 말한다. 실상을 알고 보면 두려움은 사기꾼과 같은 존재라고. 예컨대 운동선수들이 경기할 때마다 갖는 두려움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왜곡돼 있다는 것이다. 충분히 난관을 극복할 수 있음에도 스스로 그것을 방해하는 괴물을 만들어 머릿속에 앉혀놓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렇다, 이 괴물은 바로 ‘콤플렉스’다. 두려움은 공포심을 느끼게 만든 ‘사실’이 아니라 감정의 집착이 키운 ‘결과’라는 것이다.

한 교수에 따르면 ‘부정적 자기암시’가 괴물을 키운다.
“선생님, 제 안에 괴물이 살고 있는 것같아요.” 어느날 경기도에서 골프를 가장 잘 친다고 알려진 세미프로 골퍼가 한 교수를 찾아왔다. 이 선수는 프로테스트를 받을 때마다 마지막 홀이나 그 직전 홀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범해 프로골퍼의 문턱에서 고배를 마시곤 했다. 이 선수는 한 교수와의 상담에서 자신의 가족 이야기, 선배들과의 관계,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처지 등 그동안 가슴 속에 숨겨왔던 속내를 털어놨다. 그는 프로가 되지 못해 아쉬운 것도 있지만 프로가 된 뒤 겪게 될 답답한 상황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이 선수의 ‘마음속 괴물’의 정체는 그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가 뒤엉킨 콤플렉스였다.

마음속 괴물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자신의 정체성부터 명확히 세워야 한다.
한 교수에 따르면 운동선수들의 경우에도 자신의 정체성이 뚜렷할수록 슬럼프에 빠지더라도 쉽고 빠르게 탈출한다. 이에 반해 슬럼프에서 잘 헤어나지 못하는 유형은 자기개념(self-concept)이 빈약한, 즉 자기비하에 빠진 사람들이다. 자기개념이란 자신을 지각하고 평가하는 것을 의미하는 심리학 용어다.

한 교수는 결정적 순간에 자신을 무릎을 꿇게 만든 괴물을 타인이 아닌 스스로가 만든 것이라고 말한다.
또 슬럼프에 빠진 이들에게 자신을 비하하는 말은 삼가라고 조언한다. 그런 말을 내뱉는 순간 진짜 그렇게 되는 경우를 자주 봤기 때문이란다. 번번이 우승의 문턱에서 좌절을 맛본 여성 골퍼, 명문대 출신이 득실대는 통신회사에 경력직으로 입사한 지방대 출신 직장인 등이 그런 사례들이란다.

‘저 선수는 새가슴이야’ ‘내가 잘해봤자 인정이나 해주겠어’ 등 자신이 능력이 있음에도 자신의 안에서 나오는 소리는 귀담아 듣지 않고, 남의 말에 확성기를 달아줌으로써 마음속 괴물을 키운다는 것이다.
한 교수에 따르면 불안감을 조절하기 위한 첫 단계는 ‘받아들임’이다.
“긴장하지 않았더라면 입사 면접시험에서 떨어지지 않았을 텐데”하면서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런 불안은 누구에게나 있는 보편적 감정이다. 스스로 불안해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20대 1의 경쟁률을 보이는 회사에서 꼭 일하고 싶다면, 입사시험에서 붙느냐 떨어지느냐의 당락에 대한 고민보다는 짧은 면접 시간 동안 자신의 능력을 얼마나 보여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최대한 집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마음속 괴물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두려움의 감정과 당당하게 맞짱을 뜨라는 것이다.

여기에다 자신에 대한 신뢰감을 갖는 것도 필요하다.
‘난 두렵지 않아’하면서 두려움의 감정과 마주하기를 회피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러나 이같은 자기감정의 회피는 무의식 속에 들어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더 큰 두려움으로 나타난다는 게 한 교수 설명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뚜렷이 하는 것과 더불어 목표를 명확히 설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목표는 정체성을 유지토록 하고 정체성은 목표를 강화해준다는 설명이다. 피겨스케이팅 선수로 최정상에 선 김연아도 새로운 목표가 없었다면 ‘올림픽 금메달을 딴 김연아’에 머물렀을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금메달은 수많은 목표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공항 관제사로 일하는 30대 후반의 남성이 한 교수를 찾았다. 이 남성은 자신이 직장에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도와준 선배가 이민을 가는 것 때문에 몹시 힘들어했다. 한 교수는 이 상담 사례를 들어 각자 자신의 삶에서 ‘을’이 아니라 ‘갑’의 입장을 되찾으라고 말한다. 자율성이 부족한 일부 사람들의 경우 타인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높은데, 타인에 늘 좌지우지되는 삶이 행복할 리 없기 때문이다.

한덕현 교수는 의대생 시절 정체성 문제로 방황을 했다. 앞으로 어떤 의사가 되어야 하는지, 정말 그것이 자신의 길인지 확신이 없었단다. 도망치듯 미국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뜻밖의 행운을 만났다.
펜실베이니아대 도서관에서 학술지를 읽을 때였다.
미국정신의학회 학술지인 ‘미국정신건강의학저널’에 실린 ‘스포츠 정신의학의 개관’이란 제목의 연구논문이 그것이었다.

“아, 이것이다!”
텅 비어있던 그의 머릿속에 ‘스포츠 정신의학자’라는 정체성이 각인된 순간이었다. 이후 스포츠 정신의학도의 꿈을 이루기 위해 전력질주를 했다. 가난했던 유학생 시설, 한국에서 전지훈련을 떠나온 선수들을 만나기 위해 아내 몰래 10달러씩 모은 비상금으로 보스턴에서 플로리다로 날아가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현재 국제스포츠정신의학회 정회원인 한 교수는 2009~2012년 세계 3대 인명사전 가운데 하나인 미국 ‘마르퀴즈 후즈 후’ 의학 부문에 등재됐고, 2010년 미국정신의학회(APA) 학술대회에서 ‘젊은 연구자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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