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담쓰담의 힘
이번 주 야구친구 칼럼은 어제 인상깊게 본 휘문고 72번 코치님을 떠올리며 써봤습니다.
“쓰담쓰담의 힘 – 가벼운 스킨십이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
(야구친구 http://www.yachin.co.kr/w/73/36)
한 점차로 뒤지고 있는 8회말 원 아웃 만루에서 휘문고의 1학년 타자가 삼진으로 물러난다. 하늘을 한 번 쳐다본 후 다시 고개를 푹 숙인 채 돌아오는 선수에게 덕아웃 앞에 서있던 휘문고의 코치가 박수를 보내주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코치는 힘없이 들어오는 선수의 등과 엉덩이를 한 번씩 쳐주며 다시 한번 낙담한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우승후보인 경남고를 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형들과 친구들을 보기가 미안했는지 선수는 덕아웃으로 들어가지 않고 등을 두드려준 코치의 옆에 쪼그려 앉아 하늘 한번 땅 한번 쳐다보며 한숨을 지었다. 코치가 그 모습을 보고 다시 한번 팔을 뻗어 아무 말 없이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어 주셨다.
코치의 그런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어서 이후부터 경기를 보는 틈틈이 코치의 행동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코치는 대기 타석에 있는 선수의 등에 손을 얹거나 살짝 쓰다듬어 주며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수비를 마치고 들어올 때 주먹을 부딪히거나 하이파이브를 하는 모습은 기본이고, 때로는 실수한 선수를 어깨 동무를 하며 위로해 주고, 때로는 어깨에 손을 올려놓고 지시사항을 전달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가벼운 신체접촉이나 ‘스킨십’이 관계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에 대해서는 여러 연구결과가 증명하고 있다. 교사가 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과 같은 ‘따뜻한 터치’가 학생의 자기 통제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하며, 수술을 앞두고 간호사가 손을 꼭 잡아주면 긴장이 풀리는 효과가 커진다고 전해진다.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이 시장과 거리로 나가 사람들과 악수를 하려고 하는 이유도 이와 통한다.
2010년 버클리대학교에서 NBA 농구팀의 신체접촉을 분석한 사례도 흥미롭다. 여러 변수들을 통제했을 때 하이파이브라든지, 가슴이나 주먹을 부딪히는 행동을 자주한 팀이 성적이 좋았다는 연구결과는 팀원들간의 공감적인 신체접촉이 경기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그날 휘문고의 코치가 보여준 ‘쓰담쓰담’의 에너지가 선수들에게 전염되었는지, 유격수인 선배는 경기 막판 송구미스로 쓰라린 실점을 내주고 주저 앉아 있는 후배에게 짜증을 내기보다 바로 다가가 어깨를 감싸주며 ‘괜찮다’는 신호를 보내주었다. 1루수 형은 삼진을 당한 볼판정이 너무 억울해 한참을 배터박스 옆에 앉아 있던 동생에게 다가가 등을 두드려 주고 자신의 자리로 뛰어 나갔다.
두려움이나 슬픔 속에 빠져 있을 때 온갖 미사여구로 포장된 위로의 말보다 따뜻하게 안아주는 것이 감정으로부터 벗어나는데 더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어쩌면 하이파이브나 손을 부딪히는 세레모니는 이겼을 때가 아니라 졌을 때 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PS. 아. 물론 투수의 볼에 터치를 한다고 해서 매일 던질 수 있는 초능력이 생기는 것은 아니니 오해는 없어야겠다. 대체의학은 과학적인 방법으로 그 효과가 입증될 때 기존의 의학과 통합되어 시너지효과를 낳지만, 일부의 성공사례를 근거로 맹목적으로 따르는 순간 사이비의학으로 변질되어 세상에 큰 피해를 입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