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구이언

목동야구장 그라운드 정비 관람기

보고 싶은 선수들이 몇 명 있어 이른 아침 청룡기 고교야구대회가 열리는 목동야구장을 찾았다. 조금 늦게 경기장에 도착하니 그라운드를 정비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경기시작 시간이 이미 지났는데 그라운드 정비를 이제서야 시작하는건가? 정비하는 인원도 두 명에 불과하다. 한 분은 부지런히 손수레에 마른 흙을 퍼나르고 있고, 나머지 한 분이 외롭게 땅을 고르고 있다. 경기를 준비해야 할 지도자와 선수도 마운드를 고르며 손길을 보태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조금 지나면 사람들이 더 달라붙어 작업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라운드의 모습은 여전히 느긋하다. 이 여유로움이 나는 이해가 되질 않는다. 아무래도 시간이 꽤나 걸릴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든다. 내야 한켠에 뒷짐을 지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궁금하다.

지켜보기 시작한 지 30분이 지났지만 아직 네 개의 베이스 주변 중 하나도 정비가 끝나지 않았다. 그라운드 정비를 하느라 경기가 늦어지고 있으니 양해를 바란다는 장내 아나운서의 안내멘트가 간간히 나온다.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해 책을 꺼내들기로 한다. 가방 속에 잠자고 있던 <유라시아 역사기행>을 펼쳐들었다. 지금의 유럽과 아시아 전역을 누비며 역사를 이어온 유목민의 삶의 방식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정착민들은 성을 쌓고 유목민들은 길을 만든다는게 그들의 삶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특성이다. 서문의 한 구절이 눈에 들어온다.

“디지털사회의 빠른 정보화와 이동, 탈국경화, 다문화 등은 유목 문화의 특징과 닮았다.”

야구에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첨단 IT기술과 장비들이 야구장을 무대로 자웅을 겨루고 있다. 데이터야구는 이제 야구를 즐기는 새로운 관점을 넘어 경기전략과 스카웃에도 깊숙하게 연결되어 있다. 뇌과학과 신경과학 등의 최신연구결과들은 선수트레이닝 방법에 혁신을 가져오고 있다.

한 시간 정도 지나니 작업을 하는 인원이 한 명 더 추가되었다. 여전히 운동장에서는 작업을 독려하는 모습이나 긴박감은 찾아볼 수 없다. 책 읽기 딱 좋은 분위기다.

“험난한 환경을 딛고 동서 문명의 교차로 역할을 했던 초원 사람들은 야만인도 악마도 아니었다. 물론 정착민들에게 빌붙어 사는 약탈자도 아니다. (중략) 유목민들을 ‘약탈자’로 만든 것은 정착민들이었다. 정착민들이 유목과 농경의 교역구조를 무너뜨려 분쟁을 촉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는 대부분 정착 집단의 일방적인 기록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 구절을 접하며 ‘우리 야구계에서 정착민은 누구일까?’ 하는 쓸데없는 공상에 빠진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풍경이 무언가를 상징하는 모습같다.

관중석을 둘러본다. 대부분 선수 학부모나 스카우트 등 소위 말해 이해관계자들인 듯하다. 그래서인지 특별히 불만을 말하는 사람은 없어보인다. 만약 연극이나 콘서트 같은 이벤트에서 특별한 사전공지 없이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본다. 이 경기 역시 입장료를 받고 진행하는 대중이벤트다. 어차피 일반 관중은 없을 것이고 학부모들이야 뭐라고 하겠어? 이런 생각인가? 주최측의 무심함과 오만함에 화가 난다. 야구경기에서 비로 경기가 지연되는 경우는 언제든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날씨의 예기치 못한 변화를 인간이 어찌하겠는가? 하지만 밤새 비가 내렸고 오늘 제 시간에 경기를 진행하고자 했다면 그에 맞는 준비를 사전에 했어야 했다.

성질이 뻗치니 책이 더 잘 읽어진다. 말에 물려지는 재갈의 역할을 설명하는 구절이 흥미롭다.

“말이 사람의 뜻대로 움직이게 하려면 말 입에 재갈을 채워야 한다. 보통 두 번째 어금니를 빼거나 갈아서 그 사이에 재갈을 끼운다. 말을 타는 사람이 재갈을 당기면 말의 이빨에 엄청난 압력이 가해지니 말은 사람의 명령을 따를 수 밖에 없다. 이처럼 말이 단백질 공급원에서 탈 것으로 전환하는 데는 재갈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야구계, 특히 학생야구의 여기저기에 재갈이 물려져 있다. 어지간한 일에 목소리를 내면 재갈에 엄청난 압박이 작용하게 된다.

경기가 이제 곧 시작할 것 같다. 긴박하고 분주해야 할 시간들이 한가하게 흘러가는 이 기이한 경험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대회의 슬로건으로 사용되고 있는 ‘예절의 야구’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삶의 중요한 가치인 예절은 오랜 세월 동안 순응과 복종을 강요하기 위한 도구로 오용되어 왔다. 심판은 선수에게 예절을 보여주고 있는가? 지도자는 선수를 예의를 갖춰 대하고 있는가? 지금 협회는 선수들을 포함해 이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예절의 야구’를 보여주고 있는가? 예절이나 예의는 선수들에게만 요구되어서는 안된다.

“성을 쌓고 사는 자는 반드시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고 길을 닦는 자는 살아남을 것이다.”

울란바토르 어느 지역에 있는 장군의 묘비에 적혀있는 비문이라고 한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살다보면 이런저런 자기만의 성을 쌓게 된다. 성을 쌓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쌓아 놓은 성 안에서만 머무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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