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Are The World’ 녹음 현장에서 벌어진 일
‘We Are The World’를 녹음한 날 밤에 있었던 일들을 기록한 다큐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을 재밌게 봤다. 음악을 좋아하는 코치분들도 한 번 보시면 좋겠다. 팀 케미스트리와 코칭에 관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장면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노래를 만들고, 각자 부를 파트를 알려주고, 모여서 몇 번 연습하고 뚝딱뚝딱 녹음을 마쳤을 걸로 생각했는데, 저녁 10시에 모여 아침 8시쯤 끝난 강행군이었다. 중간에 가사를 바꾸기도 하고, 새로운 가사와 멜로디를 넣자는 주장을 가지고 티격태격하기도 하고, 올 것으로 기대했던 프린스가 결국 오질 않아 휴이 루이스로 솔로 파트를 바꾸고, 최고의 뮤지션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래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 실수를 반복하고, 신디 로퍼의 목걸이가 자꾸 소음으로 잡히는 바람에 문제를 찾느라 시간을 보내고 등등 녹음의 과정은 문제 해결의 연속이었다. 짜증과 긴장감 등이 종종 영상으로도 느껴졌다.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단호하게 가수들의 체력과 정서적인 부분을 컨트롤하는 프로듀서 퀸시 존스와 사실상 이 녹음을 주도했던 라이오넬 리치의 말과 행동이 인상적이었다.
여러 재밌는 에피소드 중에서도 나의 눈길을 끈 것은 단연 밥 딜런의 녹음 장면이었다. 워낙 음역대가 다른 가수들과 달라서 코러스 파트에서도 입을 다물고 있어야 했고(화음이나 다른 음역대의 소리를 넣지 말라고 퀸시 존스가 강력하게 주문했기 때문) 특유의 무표정한 표정으로 녹음하는 내내 현장의 분위기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듯한 모습이 영상으로 느껴졌다. 워낙 자신의 노래와는 스타일이 다른 노래다 보니까 자신의 파트 녹음이 시작돼도 좀처럼 입 밖으로 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스티비 원더가 밥 딜런을 데려가서 피아노를 치며 밥 딜런 스타일로 해당 파트를 불러주었다. 그동안 수없이 들어서 익숙한, 이 노래의 밥 딜런 파트 그대로였다! 밥 딜런은 그 노래를 들으며 환한 웃음을 보였는데, 내가 다큐를 보며 처음 보는 밥 딜런의 웃는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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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라이오넬 리치는 혼자 작업하는 걸 선호했던 밥 딜런이 편하게 녹음을 할 수 있도록 대부분의 사람들을 밖으로 나가도록 했다. 그렇게 녹음이 끝났고, 퀸스 존스가 아주 좋았다고 말하자 세상 달관한 듯한 이미지의 밥 딜런도 어린 아이같이 기뻐했다. 천하의 밥 딜런이 눈치를 보는 모습이 나에게는 무척 재밌었다.
당시에도 그렇고 이후에도 이 노래가 흘러나올 때 별다른 감흥이 없는 편이었는데 다큐를 보고 노래를 다시 들으니 정말 아름다운 노래더라. 스토리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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