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코치는 가르치지 않고 보여준다
서울시 체육회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서울스포츠> 기고글입니다.
캘리포니아의 한 농구코치가 일으킨 나비효과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추신수 선수는 2013년에 ‘Runs for Dream’이라는 사회공헌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자신의 타격 성적에 따라 기부금을 적립해 다문화 가정의 난치병 환자들과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활동이다. 추신수 선수가 이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신시내티 레즈 시절 더스티 베이커 감독과 나눈 대화가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늘 진지하게 야구를 하는데 길들여져 있던 추신수 선수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자주 하는 조언인 ‘즐기면서 하라’는 말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도대체 즐기면서 야구를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우연한 기회에 베이커 감독에게 ‘진정한 엔조이enjoy’가 무엇인지 묻게 된다. 추신수 선수의 물음에 베이커 감독은 ‘내가 받은 만큼 똑같이 돌려주는 것’이라고 답한다. 자신이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을 당연히 여기지 말고 세상과 나누면서 사는 것이 삶을 즐기는 태도라는 것이다.
추신수 선수는 야구로 물었지만 베이커 감독은 삶으로 답을 했다. 베이커 감독의 이 짧은 메시지는 추신수 선수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는 19살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와 말도 통하지 않고, 음식도 입에 맞지 않는 하루하루를 보내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래서 당시의 서러움과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 고민하다가 다문화 가정을 돕기로 선택한 것이다.
선수의 경기력 뿐만 아니라 삶 자체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베이커 감독의 관점은 고등학교 시절 농구팀의 은사인 엘리 맥컬러Eli McCullough 코치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방황하던 고등학교 시절, 베이커 감독에게는 스포츠가 마음의 울분을 토해내는 일종의 해방구였다.
당시 20대 후반의 젊은 지도자였던 맥컬러 코치는 베이커 감독에게 아버지와 다름없는 존재였다. 그는 늘 가슴을 열고 제자의 아픔에 공감해 주었다. 경기장에서 베이커 감독이 슛을 계속 실패하거나 형편없는 플레이를 반복하면 경기 외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그러면 베이커 감독은 집에서 벌어진 일, 부모의 이혼으로 인한 스트레스 등을 맥컬러 코치에게 털어놓으며 힘든 시기를 헤쳐나가곤 했다.
이는 베이커 감독이 야구감독을 하며 줄곧 실천하고 있는 습관이 되었다. 선수를 보다 깊이 알려고 노력하는 것. 경기장 안팎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관심을 기울이는 것. 조금 더 선수를 알기 위해 먼저 말을 건네는 것. 이 모두가 누군가 말이나 글로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스승이었던 맥컬러 코치가 직접 보여준 모습일 뿐이다. 캘리포니아의 한 고등학교 농구팀 코치가 60여년 전에 보여준 선수에 대한 전인적(全人的)인 관심은 나비효과가 되어 태평양 건너의 다문화 가정 어린이에게로 이어졌다.
비즈니스 세계로 전파된 풋볼 감독의 메시지
포드 자동차의 새로운 사업모델인 ‘스마트 모빌리티smart mobility’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짐 해켓Jim Hackett CEO는 미시간대학 시절 풋볼을 하며 보 스켐베클러Bo Schembechler 감독으로부터 배운 삶의 교훈을 기업활동에 적극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풋볼 선수인 해켓은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훈련에 참여할 만큼 성실했다. 하지만 그는 그다지 체격이 좋지도 않고, 파워도 평균적인 수준인 후보 선수였고, 여러 포지션을 옮겨 다니며 뛰곤 했다. 이런 자신의 현실을 묵묵히 견뎌내던 어느 날 해켓은 자신이 정말 팀에 필요한 선수인지 의문이 들었다. 불면의 밤을 보낸 어느 아침, 감독을 찾아간 그는 그간 쌓아 놓았던 이야기들을 모두 쏟아냈다. 평소 단호한 원칙과 엄격한 규율로 팀을 이끄는 것으로 유명한 스켐베클러 감독은 해켓의 하소연을 묵묵히 들어주었다. 선수가 모든 것을 다 쏟아냈다고 판단한 감독은 해켓의 눈을 바라보며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넸다.
“해켓, 네가 느끼는 감정을 이해한다.”
그리고는 해켓이 주전으로 뛰지 못하는 이유를 차분하게 설명해주었다.
“해켓, 네가 뭘 해야 한다고 말해주기는 어렵구나. 하지만 네가 팀에 쓸모가 없다든지, 존중받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날의 대화 이후 해켓은 마음의 방황 없이 미시간 대학에서의 풋볼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게 된다.
스켐베클러 감독은 선수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듣는 것을 지도자의 중요한 덕목이라 믿었다. 그래서 모든 선수들 뿐만 아니라 팀을 도와주는 여러 관계자들과도 개인적인 교감을 나누고자 노력했다. 그가 매년 시즌을 앞둔 첫 미팅에서 선수들에게 가장 먼저 전달한 것도 ‘하찮은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메시지였다. 트레이너든 매니저든 기숙사와 구내식당 등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든 모두 자기 분야의 전문가이며 하나같이 중요한 사람들이므로 존중하는 태도로 깍듯이 대할 것을 주문한 것이다.
그가 20여년의 재임 기간 동안 기록한 234승의 기록과 지금까지도 미국대학풋볼리그에서 깨지지 않고 있는 85%의 승률은 그가 선수 및 경기장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보낸 따뜻한 관심이 응원의 에너지로 돌아와 뛰어난 플레이로 펼쳐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스켐베클러 감독은 ‘다른 모든 것들을 제대로 하고 있더라도 문제를 가지고 있는 선수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지 않는다면 그 지도자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고 자신의 코칭철학을 말한다.
미시간대학을 졸업한 짐 해켓은 후 비즈니스의 세계로 뛰어들어 자신의 스승으로부터 배운 교훈을 적용해 나간다. 회사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보다 깊이 알기 위해 다양한 사람들에게 귀를 열고 이야기를 들으려고 노력한다. 그러한 노력으로 그는 가구회사인 스틸케이스Steelcase사를 빠르게 성장시키며 포춘Fortune지가 선정한 ‘500명의 대표적인 CEO’에도 이름을 올리게 된다. 보 스켐베클러 감독이 보여준 공감적 리더십은 그라운드 안의 선수들에게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사회의 각 분야로 진출하며 여러 회사와 조직에 전파된 셈이다. 스켐베클러 감독이 2006년 타계하였을 때 미국 전역에서 보여준 뜨거운 추모열기는 그가 보여준 말과 행동들이 단순히 운동장 안에만 머무는 가치가 아니었음을 증명해 주었다.
말로 가르치지 않고 삶으로 보여준다
프로통산 103승이라는 업적을 달성하고 작년부터 고양 다이노스의 투수코치로 선수를 지도하고 있는 박명환 코치는 자신의 삶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인물로 청구초등학교 손용근 감독을 꼽는다. 손용근 감독은 어린 선수들이 두려움 없이 마음껏 자기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경기 중에 일체의 작전을 내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린 선수들이 운동기계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수업을 꼼꼼히 챙기고, 야간훈련도 하지 않는다. 많은 훈련이 반드시 실력향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믿기에 다른 학교들이 보통 한달 정도 떠나는 동계훈련도 가지 않는다. 감독이 경기의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기에 청구초등학교 선수들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힘차게 배트를 휘두른다.
박명환 코치는 실력이나 기타 여러가지 이유로 아이들을 편애하지 않았던 스승의 모습도 또렷이 기억한다. 실제 손용근 감독은 소아마비였지만 야구가 너무 하고 싶었던 한 학생을 야구부에 가입시켜 다른 선수들과 똑같이 경기와 훈련을 경험하도록 배려하기도 했다. 학부모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는 우리나라 엘리트 스포츠 현실에서는 참으로 보기 힘든 선택이다. 손용근 감독이 주변에 휘둘리지 않고 공평무사하게 선수들을 대하는 모습은 박명환 코치가 훗날 선수와 지도자생활을 하는 바탕이 되었다.
박명환 코치는 자신만의 분명한 원칙과 기준을 가지고 팀을 끌고 나가는 스승의 모습을 보며 ‘도덕은 곧 용기’라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고백한다. 양심에 바탕을 둔 도덕적인 삶은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그렇게 살겠다는 용기를 냄으로써 얻어진다는 것을 배웠다는 것이다. 이런 깨달음은 훗날 후배 선수들을 위해 선수협을 만들고자 고군분투하게 되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에게는 비록 그러한 선택으로 인해 온갖 불편함과 불이익이 따라올 지라도 기꺼이 용기를 내어 행동하는 것이 스승으로부터 배운 진정 가치있는 삶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