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아웃 마중 문화
언제부터인가 이닝이 끝나면 선수들이 덕아웃 앞으로 나와 수비를 하고 오는 선수들을 마중나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제 기억으로 전에는 이런 풍경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기억할 수 없는 어느 시점부터, 어느 팀에서 시작한 문화가 리그 전체로 퍼진 것으로 보입니다. 수비하느라 고생한 동료를 마중나가는 모습이 훈훈해 보이기도 하지만 저는 다소 마땅찮은 구석이 있습니다.
대개 덕아웃에 남아있는 선수는 ● 주전 중에 휴식일을 보장받은 선수와 ● 대타, 대주자, 대수비 역할을 할 백업 선수일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경기마다 8번은 함께 나와 밝은 표정을 애써 지으며 들어오는 선수를 맞아 주어야 합니다. 매번 그 순간을 챙겨 나와야 하는 백업 선수들의 마음을 헤아려봅니다.
그게 뭐가 힘든 일이라고 트집을 잡냐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힘든 일은 아닐 수 있어도 내키지 않는 일일 수는 있습니다. 내키지 않는 일을 억지로 반복해서 하면 사람의 마음에는 무언가가 쌓이게 됩니다. 그런 일들은 가급적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선수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에러를 해서 팀에 가뜩이나 미안한 마음인데 덕아웃 앞에 동료들이 기다리고 있으면 더 마음이 불편하다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냥 다 들어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이죠. 표정을 어떻게 지어야 할 지 모르겠다고 한 선수는 말했습니다. 숨고 싶은 순간에는 그냥 숨어 있도록 배려해 줄 필요도 있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덕아웃에 있는 선수들은 그냥 좀 한가하게 있으면 안되나 싶습니다. 휴식을 보장받은 선수는 경기를 느긋하게 즐기고, 백업선수들은 나름대로의 루틴으로 출전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삼으면서요.
경기 중에는 선수가 해야 할 것이 가급적 없는 환경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야구는 팀스포츠인데 너무 이기적인거 아니냐고 하실 분들도 계실텐데요. 격려나 위로가 필요한 동료 선수가 보이면 덕아웃에 들어왔을 때 다가가 등을 두드려주거나 뺨을 꼬집거나 하면 될 일입니다. 저런 사실상(!) 강제된 행동이 아니더라도 우리 선수들 상당수는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