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변화, 코치의 변화 (다구치 소)

자기성찰이 동반되지 않은 성취는 미래의 성공에 장애물로 작용하곤 합니다. 서영원님 덕에 일본야구의 코칭문화가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 계속 배우네요. 감사합니다. (출처 : 야후재팬)

저는 1969년생입니다. 스포츠 현장에서는 ‘끈질긴 근성주의’에서 ‘합리주의’로 옮겨가는 세대입니다. 일반적인 하체훈련법으로 여겨진 ‘쪼그려뛰기’가 사실은 무릎에 안좋다는 것을 알게된 것은 훨씬 나중의 일입니다. 근성을 키우기 위해 물을 마시지 않는다는 관행도 있었습니다. 한 야구명문고는 물을 마시지 못하게 하려고 수도꼭지를 철사로 묶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충분히 수분을 섭취하지 않으면 열중증에 걸릴 수도 있다’는 과학적이고 당연한 이유로 그런 풍경은 사라졌습니다.

당시의 스포츠계는 ‘근성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 라고 해서 지도자도 선수도 근성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는 의식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 세대 야구인 대부분은 불합리한 기합도 견디고, 탈수증으로 휘청거리면서도 다 이겨냈다는 자부심을 갖고 살아왔습니다.

저는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는 평범한 동아리 활동으로 야구를 했습니다. 고등학교는 고시엔과는 거리가 먼 공립학교에서 보냈습니다. 야구부 선생님의 전공은 기계 체조였습니다. 저는 무시무시한 기합과 근성을 시험하는 경험을 하지 않고 프로에 입문한 것입니다. 하지만 제 동기를 비롯한 비슷한 나이의 선수 대부분은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그정도로 힘든 학창 시절을 보낸 것입니다.

프로에 들어가도 근성을 중시하는 체질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저보다 나이가 많았던 선배들은 더 냉정했던 근성세대입니다. 프로입단 당시 퍼시픽리그 선배들은 죄다 이미지가 딱딱한 분들만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타카쿠라나 스가와라같은 선배들 사이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저의 등골을 서늘하게 했습니다.

선배들로부터의 군기는 겉모양에서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말이나 태도에서의 압박도 상당했어요. 기술은 누가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훔치는 것이라는 통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너는 바보냐?”, “그만둬라. 멍청한 놈아.”, “프로를 깔보지 마라.” 이런 말을 들으며 매도당하면서도 선배들을 따라다니며 프로선수로서의 자세를 배우는 것이 매일의 과제였습니다.

예를 들어, 신인 시절의 저는 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선배의 뒤를 따라가 술을 마시며 배팅과 수비의 기술을 배우려고 필사적으로 매달렸습니다. 선배도 제가 스토커처럼 따라붙으면 어쩔 수 없이 자리에 끼워주곤 했습니다. 가끔은 술을 마시던 식당이나 바에서 테이블을 전부 벽쪽으로 밀어 넣거나 복도에 서서 기술 지도를 받곤 했습니다. 식당 종업원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보곤 했습니다. 그런 즉석 야구교실이 새벽까지 이어지곤 했습니다. 선후배가 한마음이 되어 야구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입니다.

옛날 야구 선수의 이미지는 어쩌면 술과 관련한 에피소드가 두드러집니다. 그러나 실제 은퇴를 하고도 야구를 떠나지 못한 경우가 많은 선배들은 온오프의 구분없이 항상 야구를 염두에 두고 살아온 것 같습니다. 그런 선배들과 우리 후배들 사이의 연결이 촘촘하며 뜨거운 시대였습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 분들은 저에 대해 자신들 시대의 좋았던 것만 강조하며 ‘요즘 젊은 것들은…’, ‘근성주의를 경험하지 못한 녀석은…’ 이렇게 말하는 근성주의 예찬자처럼 생각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 또래의 운동했던 사람들은 그런 불합리함을 맛본 마지막 세대입니다. 지도자나 선배에 대한 답은 “예” 밖에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것들도 무조건 따라야 했던 시대의 끝트머리 세대였습니다. 과연 그게 잘한 거냐고 물으면 답은 “아니오” 입니다.

적어도 학교에서의 운동부 활동은 경기에서의 승부도 중요하지만 거기에 이르기까지 어떤 노력을 했는지나 팀워크와 정신적 성장을 얻기 위한 장이라는 것이 제1의 목적입니다. 하지만 프로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우승일 뿐입니다. 물론 거기에 이르는 과정에서의 개인 성적도 경기를 하는 즐거움의 하나이긴 하지만 최종 목적은 결국 ‘우승’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 가운데 ‘엄격한 상하 관계나 통제를 통해 생각할 틈도 주지 않고 기계처럼 선수들을 컨트롤한다’ 이런 마인드의 지도자도 있는 반면, 그것을 부정하는 분위기도 있습니다. 승리에 집착해야 하는 프로의 세계에서도 분명히 근성주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불합리한 지도의 강요만으로는 선수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과거에 성공한 방법이 지금도 통하는 것은 아닙니다. 과거의 이론이나 기술이 지금도 통용된다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세대와 지금 선수들은 체격부터 다릅니다. 제가 현역 당시에 177cm, 77kg였는데, 일본프로야구의 평균치로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2016년 현재, 예를 들어 오릭스 1군 선수의 평균은 180.3cm, 83.6kg입니다. 12개 구단 중에 가장 큰 요미우라 자이언츠 선수들의 평균키는 182cm를 넘습니다. 제가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큽니다. 신체 사용법 등도 미묘하게 달라질 겁니다. ‘유도리(여유) 교육’과 같은 시스템을 경험하며 자란 선수들은 정신적으로도 차이가 있는게 당연합니다.

오릭스 2군 감독이 된지 1년이 지났습니다.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며 첫해에 제가 과제로 삼은 것은 자신의 이상과 이론을 선수들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시대에 맞추어 지도자측이 변화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원문기사 읽기)

プロ野球界の変遷<プロ野球・二軍の謎>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