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핸드로 잡는 정면타구, 그리고 기본기
지난주에 한국 야구에 경사가 있었습니다. 배지환 선수가 5년 만에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은 것인데요. 그 감동의 순간을 즐기기 위해 모처럼 MLB.com 어플로 들어가 경기를 시청했습니다. 배지환 선수는 타석에서도 긴장한 기색이 없이 참을성 있는 모습을 보여주더니 2루로 출전한 수비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남을 만한 플레이를 보여주었습니다.
3루 주자의 득점을 막기 위한 전진수비 상황에서 정면 타구가 날아오자 배지환 선수는 바로 백핸드 캐치를 위한 자세로 바꾸어 공을 잡고는 여유있게 홈으로 송구해 3루주자를 잡아냈습니다.
정면타구를 백핸드로 잡아서 송구하는 모습은 우리 야구에서 여전히 흔한 장면은 아닙니다. 얼마 전에도 백핸드로 잡다가 공을 놓친 프로야구 선수를 향해 기본기에 충실해야 한다는 지적을 하는 해설을 듣기도 했습니다.
배지환 선수가 보여준 포구와 송구 동작처럼, 백핸드로 잡게 되면 야수의 전반적인 자세는 송구를 위한 모멘텀이 어느 정도 만들어 지게 됩니다. 주자의 발도 느리고 타구도 그다지 느리지 않다면 상관이 없겠지만 (타자)주자가 발이 무척 빠르거나 타구가 느려서 찰나의 순간에 승부가 결정되는 상황이라면 야수가 공을 잡고 송구를 위해 자세를 전환하는 그 짧은 시간도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우리 야구는 특정 동작이나 자세를 기본기로 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면 타구를 가운데에서 예쁘게 잡는 것이 기본기가 되면 백핸드 캐치는 기본기에서 벗어난 동작이 되어 버립니다. 하지만 경기에서는 정면 타구도 백핸드나 원핸드로 잡아야 하는 상황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습니다. ‘백핸드 캐치 = 기본기에서 벗어난 동작’ 이런 메시지가 무의식 깊숙한 곳에 심어진 선수는 바로 그 상황에 필요한 동작을 본능적으로 선택하기가 어렵습니다. 실제 유소년 경기를 보다 보면 백핸드로 잡아야 할 타구인데도 어떻게든 정면으로 잡으려다가 오히려 자세가 무너지는 장면을 종종 보게 됩니다.
뉴질랜드 와이카토대학의 리치 마스터스Rich Masters 박사는 선수가 압박감을 느끼는 상황에서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이유를 ‘재투자 이론Reinvestment Theory’으로 설명합니다. 선수가 처음에 어떤 방식으로 기술을 배웠는지에 따라 압박감을 느끼는 상황에서의 경기력이 달라진다는 내용입니다.
코치의 명시적explicit 교습(명시적 교습에 대해서는 아래 링크 참조)을 통해 기술을 익힌 선수는 압박감이 큰 상황을 만나면 자신도 모르게 코치가 알려준 방식대로만 움직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마스터스 박사는 선수들의 이런 무의식적 행동을 어린 아이가 늘 자신의 곁에 있던 인형이나 담요를 움켜쥐는 애착행동에 비유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움직여야 해.” 코치로부터 전해 들은 메시지가 뇌리에 강하게 박혀있을 수록 선수는 긴박한 상황에서 코치의 주문대로 움직이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백핸드 캐치 같은 플레이를 하는 선수들에게 ‘기본이 안됐다’거나 ‘겉멋 들었다’고 타박하며 위축시키는 말을 자제했으면 합니다. 좋은 기본을 갖추기를 바라는 코치의 마음과는 달리 선수들의 타고난 운동능력을 제한하는 부정적인 메시지로 작용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뉴스레터 29호 코치라운드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