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의 질과 반응속도는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옥덕필)
지난 10여 년의 대표선수 시절 동안 세 번의 올림픽을 연속으로 단독 출전하면서 선수로서 잠을 잘 자는 것이 얼마나 뒷날 운동 수행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익히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나의 잠에 대해 깊이 있는 조언을 하거나 평가하거나 문제에 대해 대책을 마련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물론 그것은 스스로도 마찬가지였고, 그런 의문점들과 운동능력 향상에 대한 갈증들이 나를 지금도 쉼 없이 공부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경기력에 영향을 주는 ‘잠’의 비밀
잠이라는 것이 환경에 의해서 달라지고 그날의 훈련이나 영양에 의해서도 달라진다. 어떨 때는 잘 자고, 어떨 때는 불면에 시달려 뒷날 경기를 망칠 때도 많았다. 선수로서는 어지간히 조절하기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오늘은 잠에 대한 얘기를 해 보려고 한다. 수면과 스포츠 퍼포먼스 간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연구가 있었으며, 지금도 연구는 계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수 없이 많은 연구들을 다 찾아볼 수는 없지만 보편적인 결과는 다 비슷하며 아래와 같은 이유들로 스포츠에서의 경기력을 저해하는, 혹은 향상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 반응시간 혹은 속도
• 운동신경 기능
• 동기부여
• 집중
• 스트레스 조절
• 근육 회복
• 스프린트 속도
• 근육 글리코겐 저장능력
• 당대사 능력
• 기억과 학습
• 부상의 위험성
• 질병 발생 빈도
• 원치 않는 체중의 증가
위에서 언급된 수면의 영향 중에서 야구와 연관이 없는 것은 무엇일까? 아니면 야구 퍼포먼스와 상관관계가 높은 것은 또 어떤 것들이 있을까? 야구에 필요한 운동능력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보편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다음과 같은 능력이 필요할 것이다.
1. 빠른 공 혹은 타자가 치기 어려운 공을 정확히 던지는 투수의 능력
2. 빠른 공도 정확히 쳐내는 타자의 능력
3. 빨리 달리는 능력
4. 오랜 시간 동안 집중할 수 있는 능력
5. 빠른 회복 능력
6. 팀 내의 혹은 상대선수와의 심리전에서 스스 로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
여러 가지 중요한 요소들이 많겠지만 오늘은 수면과 연결하여 볼의 성질을 정확하게 판단하는 능력과 반응 속도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기로 하자.
먼저 타자의 입장에서 시속 145km 정도의 볼을 어떻게 정확히 판단하고 요리할 수 있는지를 설명한 그림 하나를 보면서 운동생리학적 개념에서 몇 가지 중요한 요점들을 간단히 짚어보고 이야기를 풀어 가면 이해가 좀 더 쉬울 것 같다.
0.4초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과 반응속도
위의 그림은 2002년 출간된 《The Physics of Baseball》(Robert K. Adair 저)이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타자의 입장에서 볼을 정확하게 타격 하기 위해서 약 0.4초 동안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다.
- 와인드업 : 볼이 투수의 손을 떠나는 순간의 움직임을 제대로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 75-100ms : 투수가 던지는 볼에 대해 첫 번째 이미지를 만들기 전에 볼은 이미 3미터 정도를 이동한다.
- 175ms : 타자는 투구의 타입에 대해서 속도, 회전, 예상되는 방향 등에 대한 정보를 파악한다.
- 225ms : 스윙을 할지 말지를 결정해야 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스윙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 하는 순간부터 볼이 방망이에 맞을 때까지 약 150ms이 걸리기 때문에 스윙에 대한 결정은 반드시 최소 25ms 이전에 해야 한다. 왜냐하면 뇌에서 결정한 내용의 정보값이 여러 근육군들로 전달되기 위해서는 최소 25ms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350ms : 실력이 우수한 타자만이 이 순간에도 (방망이의 속도가 최고 속도의 75%에까지 도달 하는 순간에도) 타격의 타입을 미세하게 조절할 수 있다.
- 400ms : 볼이 홈 플레이트를 지나간다.
*참고: 눈 깜빡임의 속도는 약 150ms이며, 145km/h 속도의 패스트볼은 눈을 세 번 깜빡 이는 동안 홈 플레이트에 도착한다.
위의 설명을 읽어보면 타자의 입장에서 볼을 정확히 쳐내기 위해서는 타격자세나 체력과 같은 것보다 정확하고 빠른 판단, 그리고 의사결정과 명령 체계의 속도와 정확성이 그 이후의 모든 것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트레이닝의 입장에서 우리가 야구선수들에게(여타 종목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어떤 훈련을 보다 더 집중적으로 해야 하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대체로 잘 치고, 잘 던지고, 잘 달릴 수 있어야 하는 스포츠가 바로 야구가 아닌가 생각되지만 사실은 그 앞에 하나의 수식어가 반드시 붙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오늘의 주제와 연관되는 ‘무엇 무엇에 반응하여’라는 것이다.
뇌와 시신경 사이에 일어나는 시각정보 처리 속도
야구에서 반응속도의 중요성은 그 어떠한 운동 능력보다 기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보통은 반응속도를 민첩성이나 순발력 정도로 생각 하거나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물론 순발력이나 민첩성에도 반응속도라는 것이 내포되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 아주 큰 차이가 있다.
과거 어떤 팀 선수들의 민첩성을 검사하기 위해 5-10-5(Pro-Agility) 검사를 실시했던 적이 있다. 출발점에 서서 좌로 5미터, 우로 10미터, 다시 좌로 5미터를 달리는 대표적인 민첩성 검사인데 방향은 출발 전에 이미 정해져 있다. 따라서 선수의 입장에서 출발이 준비되면 스스로가 원하는 타이밍에 출발을 하면 되고 상황판단과 의사 결정에 대한 시간 따위는 필요 없다.
똑같은 검사를 반응형으로 실시했다. 모든 내용은 같지만 한 가지 다른 것은 주어지는 시각적 신호에 의해서 처음 출발하는 방향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물론 한 번의 검사로 모든 것을 판단해서는 안 되겠지만 Pro-Agility 검사와 Reactive Pro-Agility 검사를 해보면 해당 선수가 시각적 신호를 판단하고 의사를 결정하여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따로 계산을 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선수에 따라서 두 검사는 완전히 다른 결과 값을 줄 수 있다.
이렇듯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의 이유로 야구 선수들은 특히 반응속도라는 것에 대해 몰입할 필요가 충분하다. 반응속도는 ‘뇌와 시신경 사이에 일어나는 시각정보 처리 속도’와 관련되어 있다. 잘 관찰해야 하고, 잘 판단해야 하고, 빨리 명령해야 하고, 빨리 움직여야 하지만 그게 정확해야 하는 것이 야구이며, 특히 타자가 해야 하는 일들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러한 반응속도가 오늘의 주제인 수면과 아주 상관성이 높다는 것이다.
수면의 질이나 양에 의해 반응속도나 인지기능은 20% 이상 감소될 수도 있다. 심지어 하루 24시간 중에서 수면의 주기에 의해 활동을 하는 시간 동안 반응속도와 인지기능이 최고치를 보일 때(두 번)와 바닥을 치며 내려가는 타이밍이 존재한다는 것(한 번)이 여러 연구를 통해서 밝혀졌다. 야구선수들과 학부모들, 그리고 지도자들은 이런 부분들을 적절히 잘 이용해야 할 것이다.
반응속도 10% 향상을 위해 트레이닝으로 투자해야 할 돈은 과연 얼마나 될까? 반대로 반응속도가 최적화된 상황에서 훈련이나 경기를 할 수 있다면 어느 정도를 기분 좋게 투자할 수 있을까? 얼마나 경제적인 비용으로 이런 것들을 실현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된다면 아마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도대체 그럼 어떻게?’ 라는 질문이 돌아올 것이다. 과학의 힘을 빌려야 한다. 짐작하지 말고 경험으로 미루어 보지 말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소통하고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여야 한다. 수면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최적의 디바이스와 소프트웨어, 시각적 정보처리 속도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소들을 검사하고 단점을 정확히 파악하여 이를 개선할 수 있는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수면은 반응속도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반응속도는 정확한 타격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지게 되므로 최적의 수면 상태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운동선수에게 가장 적합한 수면
디바이스 운동선수들에게 가장 적합한 대표적인 수면 디바이스를 예를 들자면 OuraRing, Readiband, Firstbeat 등을 들 수 있다. 시중에서 유통되는 수많은 제품들 중에서 일반 소비자의 입장에서 데이터에 대한 신뢰성과 타당성 등이 철저히 검증된 제품을 식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중에서 오라링은 최근 코로나로 인해 전세계 적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오라링의 체온센서, 심박센서, 가속도센서 등은 감염에 의한 체온의 변화와 자율신경계의 변화를 동시에 모니터링할 수 있기 때문에 감염병이 유행 중인 이 시기에 가장 인기 있는 제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NBA의 전 구단과 관계자들이 3000 개의 오라링을 구입하여 모두에게 지급 했다는 사실이 각종 매체에 알려지면서 오라링은 수면 트래커 중에서는 최고의 제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다음은 Firstbeat Life라는 제품이다. 퍼스트빗 테크놀리지라는 핀란드 회사는 세계적인 심박변이 분석 알고리즘 기술을 가진 회사로 순토, 소니, 가민, 삼성 등에서 출시되는 대부 분의 스마트 워치의 심박변이 기술을 라이센스 계약으로 보급하고 있다. 퍼스트빗의 스포츠 라이브 센서는 운동부하와 회복상태를 복합 적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떠한 종목을 막론하고 선수들의 외적/내적 운동 부하에 따른 회복상태를 정확하게 분석해서 직관적으로 대시보드를 통해 보여준다. 지도자 들이 많은 선수들을 동시에 관리하기 편하게 시스템이 만들어져 있는 것이 큰 장점이다.
끝으로 ReadiBand이다. 캐나다 제품으로 가속도 센서와 수면분석 알고리즘으로 수면과 관련된 다양한 변인들을 분석하여 각 개인의 생체리듬을 기반으로 잠에서 깬 이후 24시간 동안 반응속도 지연시간을 시간대 별로 나타내주는 기능이 있다. 실제 알코올 섭취량에 따른 반응속도의 지연과 수면부족에 따른 반응속도의 지연 형태가 거의 같다는 상관성을 바탕으로 심층적인 연구를 하였으며, 수면 부족이 컨디션이 좋을 때에 비해 몇 % 반응을 느리게 할 것인지 예측해주는 강력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운동선수의 경우 다양한 방법으로 해당 기술을 활용할 수 있으며, 특히 야구의 경우 선발 선수의 결정이나 스킬 훈련, 체력 훈련 등을 수면 데이터에 기반해 조절하면 팀 훈련 효율성과 경기력에 상당한 이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글 : 옥덕필
(주)퓨전네트웍스 대표이사, Athletic360 대표, 운동생리학 박사. 대학 동아리에서 운동을 시작하여 윈드서핑 종목에서 우승한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이다. 동아대학교에서 운동생리학을 전공하였고, 국가대표 선수 및 지도자로서 겪은 불편함들을 해소하기 위해 과학과 테크놀리지를 스포츠에 적용하여 부상을 예방하고 경기력을 향상시키는 스마트한 선수관리 솔루션을 개인선수, 팀 등에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다.
*우리야구 5호 (2021년 1/2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