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깨닫는 순간이 오도록 거울 역할을 하는 것이 선생
상당히 무서운 선생님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아마도.(웃음) 그런데 2012년 9월 영국의 리즈 콩쿠르 심사에 갔다가 가르침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국제 콩쿠르 심사를 처음 하는 게 아닌데, 그전에 못 보던 걸 그때 보게 되었거든요. 한국 애들과 유럽 애들의 차이가 눈에 확 들어온 거예요. 우리 애들이 무대에 올라오면 일단 무서워요. 어둡고 긴장되어 있는데 거의 살기가 느껴질 정도예요. 안 틀려서 입상해야겠다는 의지가 그만큼 강해요. 그런 애들을 보면 심사위원도 긴장이 돼요. 듣는 사람도 (몸을 바짝 세우고 앞을 무섭게 쳐다보며) 이렇게 딱 경직이 되기 마련이죠. 저도 그렇게 경직된 상태로 듣다가 ‘가만있어봐. 왜 이러는 거지?’ 고민을 하게 됐어요. 유럽 애들은 기능적으로는 우리보다 떨어지지만, 어쨌든 자기 이야기를 하거든요. 무대 위에서 즐기며 연주하니까 듣는 사람도 편안하게 거기에 빨려 들어가며 감상할 수 있어요. 축구도 똑같더라고요. 축구공을 보면 무서운 코치만 생각나는 우리 애들과 축구공을 놀이로 생각하는 남미 애들의 차이랄까.”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과거에 저는 불쑥불쑥 튀어나온 특징 있는 애들을 보면 마치 잔디를 깎듯이 그 울퉁불퉁한 부분을 깎아냈어요. 시간도 오래 안 걸렸어요. 6개월이면 완벽하게 깎아서 객관적인 부분만 남길 수 있었죠. 걔네들이 국제 콩쿠르에 나가서 실수 없이 상도 타고 그랬어요. 그런데 그런 애들에게 자신만의 얼굴이 있었나 생각해보니, 잘 모르겠더군요. 후회가 밀려왔어요. 이 아이는 지구상에 딱 한 명이에요. 그 한 명이 자기 느낌을 표출하고 자기주장을 하는 게 진짜거든요. 오리지널! 남이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거죠. 그걸 끌어내는 게 교육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하든 튀지 않는 게 중요한 나라잖아요
결국 타고난 게 중요한 건가요?
“타고난 것만 중요한 건 아니고요. 예를 들면 제 학생 중에 페달을 너무너무 못 쓰는 아이가 있었어요. 그래서 4년 내내 제가 페달 밟기만 가르쳤어요. 졸업 연주 하루 전날 바로 이 자리에서 레슨을 하는데 결국 다 고쳐진 걸 보고, 제가 일기에 썼어요. ‘다 고쳤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훌륭한 선생이다!’ 그리고 졸업 연주회에 갔는데 걔가 신입생 때보다도 더 나빠진 상태로 연주를 하더군요. 원점이 아니라 마이너스로 간 거예요. 그날 밤 ‘아, 나 같은 사람이 누구를 가르쳐도 되는가?’라는 회의가 밀려들었어요. 그런데 몇 년 후 걔한테 이메일이 왔는데 ‘유학 와서 제가 페달이 안 좋다는 걸 깨달았어요’ 이렇게 적혀 있는 거예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김 교수님께서 내내 그 문제를 지적하셨다면서요?
“그러니까 제가 가르친 것은 걔한테 하나도 입력이 안 된 거예요.(웃음) 뭘 가르친다는 게 의미가 없고, 자기 스스로 깨닫는 순간이 와야 하는 거죠. 굳이 얘기하자면 그걸 깨닫게 해주는 거울 역할을 하는 게 선생이고요. 인내를 갖고 더 긴 시간 바라봐야 하는 거죠.”
<다른 길이 있다> (김두식)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