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시절 개인훈련의 시행착오를 통해 얻은 깨달음 (양원혁)

나는 체격이 크지 않고 마르고 왜소한 선수였다. 학창 시절 나는 타격이나 수비는 특출난 게 없다고 스스로에 대해 생각했었다. 그나마 자신있는 건 달리기와 공을 던지는 것이었다. 그 시절 나는 집에 돌아오면 항상 주차장에서 스윙을 돌리곤 했다. 하지만 정말 많은 훈련을 하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면서부터였다. 당시 남해 캠프에 백인천 감독님께서 내려오셔서 강의를 해주셨다. 감독님의 말씀을 듣고 ‘저 정도의 노력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나는 스위치히터였기 때문에 학교의 단체훈련이 종료되면 그때부터 개인적으로 좌타스윙 500개, 우타 스윙 200개, 총 700개를 매일 하기 시작했다. 그때는 그렇게 스윙만 하면 무조건 성공하는 줄 알았다. ‘슈퍼스타가 되어야지’ 하는 마음 하나로 정말 무식하게 매일 스윙을 했다. 700개의 스윙보다 어려웠던 건 어떤 일이 있어도 나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었다.

휴일인 일요일에도 버스를 타고 학교로 나왔고, 야구부 회식을 하던 정식 경기나 대회를 어디서 하던 상관이 없었다. 다시 아무도 없는 학교로 돌아와서 개인 훈련을 하곤 했다. 훈련은 다르지만 나와 같은 시간에 훈련을 같이 갔던 친구가 있었다. 지금 SSG에서 사이드암 투수로 뛰고 있는 박민호다. 서로가 힘들 때 이야기도 나누고 끌어주기도 했기 때문에 자신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었던 거 같다.

그렇게 우리는 ‘프로에 가서 슈퍼스타가 되자’는 마음 하나로 같이 개인 훈련을 해나갔다. 지금처럼 레슨장이 활성화가 되어있지 않을 때였고 당시에는 1학년들이 돌아가면서 키 당번을 하며 선배들이 훈련 끝날 때까지 남아서 훈련을 같이 하기도 했다. 그때 분명히 나를 싫어하는 1학년들이 많았을 것 같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때부터 야구가 잘되기 시작했다. 인천고에서의 2학년 생활은 우승 2개와 타격상, 최다안타 등 좋은 성적으로 보답을 받았다. ‘역시 하면 무조건 되는구나’ 하는 생각과 개인 훈련에 대한 믿음은 더욱 강해졌다.

무조건 열심히’는 한계가 있다는 깨달음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누구나 그러겠지만 프로에 가겠다는 마음 하나로 왔기에 가장 잘해야 되고 중요한 한 해였다. 그해도 어김없이 그동안 해왔던 대로 준비를 했다. 하지만 야구가 내 마음처럼 되진 않았다. 타격도 안됐고 수비도 별로였다. 내 실책 때문에 팀이 패배하곤 했다. 고3 시즌 내내 부진은 계속 이어졌다.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혼자 스윙을 하면서 정말 많이 울었다. 지금도 그 당시의 일기장을 보면 ‘너무 힘들다. 야구에 소질이 없나.’ 등등 매일 울면서 썼던 흔적이 있다.

‘내 훈련이 부족한가?’ 하는 생각이 들어 스윙을 1000개로 늘리기도 해봤다. 그렇게 하니 손과 뼈마디가 굳어서 스윙이 돌아가지 않았다. 1000개로 바꾸고 5일째 되던 날. 진짜 스윙이 돌아가질 않았다. 이게 스윙인지 그림을 그리면서 개수를 채우는 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되겠다’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처음에 시작했을 때는 정말 스윙 하나하나에 내 폼과 밸런스를 투수가 공을 던지는 타이밍에 맞추며 스윙을 했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 ‘매일 이 스케줄을 지켜야 해. 그래야 성공할 수 있어’ 하는 생각에만 사로잡혀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 훈련은 혼자 집중하고 생각하면서 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말만 개인 훈련이지 의무적인 단체 훈련 같은 훈련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개수를 채우는데 급급했고, 훈련량은 많지만 발전을 하지 못했다. 또한 수비가 안되고 있었는데도 수비연습에 신경을 쓰기보단 스윙연습을 하기 바빴고, 수비연습이라고는 사이드 크로스 스텝과 점프 등 하체를 단련하는 훈련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연습방법을 바꾸기 시작했다. 스윙의 개수는 줄였지만 더 확실하게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면서 집중도를 높였다. 오로지 스윙만 하는 것이 아닌 다른 훈련들도 함께 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당시에 내가 알고 있는 건 지금에 비하면 완전히 기본적인 훈련들 뿐이었지만 그래도 훈련시간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지금도 프로 선수들의 야간훈련 모습을 보면 억지로 나와서 머신에서 나오는 배팅볼을 기계처럼 의무적으로 치고 들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과거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있다.

그렇게 이미지 트레이닝과 내가 나온 방송중계 영상을 보면서 나는 개인 훈련을 하는 방식을 바꾸어 나갔다. 나의 생각도 조금씩 바뀌었다. 만약 그대로 야구가 잘되고 어려운 시기가 오지 않았다면 나는 무조건 많이 스윙을 돌리고 많이 치고 받고 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에 박혔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야구가 뜻대로 풀지 않는 시간 동안 내가 했던 방법과 많이 하는 것만이 ‘무조건 정답은 아니구나’를 깨달았다.

물론 많은 훈련량이 필요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 훈련을 억지로 시간을 떼우기 위해, 아니면 개수를 채우기 위한 목적으로 하고 있다면 그것 자체가 안 좋은 습관이 될 수 있다. 훈련의 효과도 당연히 떨어진다. 다만, 그런 훈련을 통해 끈기와 인내를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해봤기 때문에 그 방법이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양보다는 질적인 훈련과 생각하는 훈련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어떤 동작이나 감각을 느끼기 위해 많은 스윙과 개인 훈련을 하는 것을 무조건 말리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시간을 보내는 훈련, 개수만 채우는 훈련은 의미가 없을 수 있다는 점이다. 집중해서 할 수 있다면 많은 양의 훈련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지금의 나를 만든 일지쓰기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써온 일기와 야구일지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 일기장은 어머니께서 모아두셨고 중학교 때부터는 야구일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게 습관이 되어 지금도 나는 일지를 계속 쓰고 있다. 일지를 써야 오늘 하루를 잘 마무리한 거 같았고, 오늘 했던 나의 훈련과 생각을 한 번 더 정리할 수 있었다.

지금 나는 노트를 네 부분으로 분류해서 쓰고 있다. 첫 번째는 당일의 스케줄 일지다. 두 번째는 일기이고 세 번째는 야구에 대한 메모다. 네 번째는 자유로운 메모와 낙서장이다. 이렇게 메모하는 습관들이 선수생활을 할 때도, 전력분석을 할 때도, 코치를 할 때도 정말 도움이 많이 되었다. 나의 생각과 오늘 훈련에서 얻은 느낌을 잠들기 전에 메모를 하며 한 번 더 생각하고 정리할 수 있었다. 좋았을 때와 안 좋았을 때의 기록과 느낌을 남겨 놓았기에 그것을 잊어버렸을 때 다시 들여다 보며 찾을 수 있었다.

또한 나는 선수 시절 연습을 하며 좋았던 것들, 그리고 감독, 코치님들의 말이나 행동 중에 좋았던 점들도 적어 두었다. 혹시 나중에 지도자가 되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실제로 지도자가 되어 다시 읽어보면서 코치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많은 것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노트에 메모를 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편하지만 노트북이던, 영상이던 다 좋다고 생각한다. 좋았던 경험이나 생각을 기록해 두면 분명 미래의 어느 날인가에 필요한 일이 생길 수 있다. 어린 시절에 적은 것들을 보면 허술하기도 하고 유치하기도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어린 시절의 허술하고 부족한 메모가 습관의 시작이었다. 잘 쓰지 못해도 좋고 본인만 알 수 있어도 좋다. 메모하는 습관을 만들어 보자. 어릴수록 좋다.

나는 학창 시절에 스스로를 야구를 잘하는 선수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왜 이렇게 나는 부족할까? 왜 잘 안될까?’ 하는 생각을 휠씬 더 많이 했던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프로에서 선수를 그만둘 시기에 야구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더더욱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세상은 내 마음처럼 절대로 흘러가지 않았고 나 역시 하고 싶어도 야구를 더 이상 못하게 되는 순간을 맞았다. 야구선수로서 큰 빛을 보지는 못했지만 지금까지 야구를 해왔던 나의 경험과 어릴 적부터 만든 습관이 전력분석 업무를 하는데도 큰 도움이 되었고, 나의 꿈이었던 프로 지도자가 되는 밑거름이 되었다. 나의 경험들이 어린 선수들에게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램이다. 좋은 습관을 만들자!

양원혁 LG트윈스 코치

코치라운드에서는 현장 코치님들의 희노애락과 코칭노하우를 담은 글을 언제나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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