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는 것이 더 안전하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데 익숙해진다

(2016년 12월에 야구친구에 기고한 글입니다.)

2016년 KBO 윈터미팅에서는 고교야구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소개되었다. 서울대 심리학과 김수안 박사는 일반학생과 야구부 학생들을 비교한 심리검사 결과를 발표했다. 대부분의 항목에서 별다른 차이가 없었지만 정서표현이 일반 학생들에게 비해 많이 부족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정서표현이 부족하다는 것은 희노애락의 감정이 일어날 때 그것을 드러내기보다는 억누르는 경향이 크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이런 연구결과는 우리 학생 야구부가 지도자와 선수간의 수평적인 대화보다는 여전히 수직적 위계질서 속에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시와 명령에 따라 움직이기만 하면 안전한 환경에서는 선수가 자신의 내면을 깊이 있게 들여다 볼 이유가 없다. 선수로서 배워야 할 중요한 능력 중 하나인 자신의 감정을 살펴보고 컨트롤하는 훈련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김수안 박사 역시 ‘참는 것이 더 안전하기 때문에 선수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데 익숙해진다’고 말한다.

또한 이렇게 지속적으로 감정을 억제할 경우 장기적으로는 충동적인 일탈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렇다면 선수의 적절한 자기표현은 무엇으로부터 시작해야 할까? 이제는 이런 측면에 대한 인식이 어느 정도 생겨서 많은 지도자들이 선수들과 대화를 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일방적인 지시보다는 질문을 통해 선수의 생각을 엿보려 하기도 하고, 공식적인 피드백 시간을 통해 훈련이나 경기 후에 선수의 의견을 듣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지도자 스스로 적절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일부 지도자들은 선수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된다고 여긴다. 말을 최대한 아끼고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것이 팀을 효과적으로 이끄는 방법이라고 믿는다.

미국의 대표적인 스포츠코칭 교육 프로그램인 ‘American Sports Education Program’을 만들었으며 <코칭과학>의 저자이기도 한 레이너 마르틴스 박사는 침묵이 언제나 ‘금’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보다 나은 관계를 위해 정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선수에게 진실한 것이며, 지도자가 적절하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면 선수들 역시 지도자에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한다. 마르틴스 박사는 시시콜콜 모든 이야기들을 선수들과 나누라고 말하지 않는다. 최소한 팀에 대해, 선수의 훈련과 경기에 대해 지도자로서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 지 솔직하게 말해주라는 것이다.

감독도, 코치도 때로는 실수를 할까봐 두렵다는 것,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지 스스로를 의심하고 있다는 것, 때로는 이유없이 지치기도 한다는 것을 선수도 알 필요가 있다. 감독, 코치 역시 실수를 하며 계속 배워나가고 있으며 자신의 과거보다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선수는 지도자의 그런 삶의 태도를 배우게 된다. 지도자가 완벽하게 보이려 하기 보다 자신의 한계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때로는 선수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며 선수 역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불필요하게 애쓰지 않게 된다. 선수들은 언제나 지도자의 말이 아니라 행동을 통해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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