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선수의 운동능력도 재산권으로 이해되어야

운동선수의 운동능력도 지적재산과 마찬가지로 재산권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시는 이대택 스포츠문화연구소장님(국민대 교수)의 글입니다.

 

위기의 엘리트스포츠 ? 재산권을 버렸기에 !

2016. 2. 17.

엘리트체육에서 최고의 가치는 아마도 국가대표로 선발되고 태극마크를 가슴에 다는 것과 세계적인 시합, 대표적으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다는 것이다. 몇 몇 스포츠에서는 금메달이 아니라면, 대신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아 안정적이고 풍요로운 선수생활을 보내는 것이다. 선수들은 이 목표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무엇이든 감내한다. 물론 다른 선수들에 비해 이 또한 우수해야 함을 잘 안다. 결과가 좋지 못하면, 다른 선수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진다면, 어쩌면 아무 것도 얻지 못할 것임도 잘 안다. 선수로 성장하다가 자신의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판단되면 목표를 급선회하기도 한다. 운동선수의 모든 과정과 목표는 운동이다. 그 외에는 없어 보인다. 운동에서 시작하고 운동에서 끝난다.

최근에는 적지 않은 종목에서 등록선수의 수가 줄어든다. 그도 그럴 것이 운동으로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이 더 이상 아니기 때문이다. 한때는 운동을 잘하거나 팀이라도 잘 만나면 그 덕에라도 운동만으로도 먹고 살 수 있었다. 최소한 대학이라도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이는 정부가 정책적으로 적극 개입하여 가능하도록 하였다. 이제는 대학에서 마저 운동부를 없애는 것이 일상이다. 대학의 선수들은 더 이상 대학 구성원을 한데 모으는 구심력의 역할을 물론 관심마저도 받지 못하고 있다. 좋은 때도 있었다. 최소한 70년대 80년대에 운동하던 선배들은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과 그 모든 사회적 배려를 누렸다. 엘리트체육이 위기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거의 전부는 이때 운동하던 사람들이다. 그들의 눈에 지금의 엘리트체육은 위기를 너머 거의 벼랑 끝에 서있는 기분이다. 그때가 그리워도 너무 그립고 그래서 국가의 관심과 지원을 아직도 바라고 있다.

운동만 해도 살아갈 수 있었던 시대에서, 운동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세상의 관심과 지원도 떨어져가는 마당에 엘리트체육이 성장은 고사하고 현재를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해법을 찾는다고 해도 체육계 대부분의 사람들은 뾰족한 실마리를 찾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좋았던 예전의 방법들 말고는 다른 방법들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 좋았던 방법이라는 것은 결국 국가의 정책적 지원과 사회의 배려인 것이다. 그러니 국가와 사회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길이 막막해 보인다.

불행히도 체육계의 기대는 세상의 변화와 동행하지 못하고 있다. 세상은 변했다. 국가도 사회도 스포츠를 전폭적으로 지원하지 않는다. 이제 체육계도 이러한 현실을 이해하고 변신해야 한다. 국가가 나를 도와주어야 한다는 패러다임에서 내 자신이 나를 도와야한다는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한다. 체육계의 변신은 외적 변신이 아닌 내적 변신이어야 한다. 여기서 제안하고 싶은 패러다임은 ‘재산권’이다. 운동이 재산이라는 말이다. 육체적 훈련이라는 숙련과정과 운동기술이라는 결과는, 마치 두뇌훈련 과정과 지적 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지적재산을 발동시키듯이, 육제적재산으로 발동시켜야 함을 말한다.

이는 정당하다. 아니 정당해야만 한다. 수년 이상의 육체적 훈련이 일종의 투자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입에서 단내가 나는 고통의 과정을 거치면서 얻는 기술을 결코 조직과 국가의 선택으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 공부를 통해 지적능력을 향상시켜 그것이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는 것처럼, 운동선수들도 운동을 통해 얻는 기량과 기술을 사회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인정은 체육계가 도와주고, 그러한 환경이 가능하도록 해주어야 한다.

운동선수가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한 번의 사용도구도 인식되어서는 안된다. 운동능력과 기량이 재산권으로 인식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를 통해 관점이 전환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환은 기량위주의 운동선수 발굴과 지원, 선수가 우선적으로 고려되는 체육단체의 운영, 선수의 활동에 대한 대가 지불의 문제, 공정하고 민주적인 승부, 투명하고 정당한 사회와의 소통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선수들은 이제 자신의 능력이 재산임을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 선수들은 자신들이 속한 조직과 구조가 선수를 위한 것인지 분석하고 판단해야 하며, 그에 상응한 대응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운동능력은 재산이기 때문이다.

재산권으로 인식되고 인지하는 순간, 많은 것들이 변할 수 있다. 선택은 조직과 단체가 하는 것이 아닌 선수들이 하며, 파생된 콘텐츠와 결과물은 타인의 것이 아니며 자신의 것이 된다. 경기를 보이콧할 수도 있으며, 이는 선수이기 전에 한 시민의 자유선택권에 해당한다. 조직과 국가를 향해 바라보는 시선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바뀐다. 국가의 지원과 사회의 배려가 엘리트체육이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사회는 영원히 그 숙제를 안고가야 할 것이고 풀리지도 않을 것이다. 이제 운동도 기능과 능력으로 평가되어야 하고, 그러한 인식전환이 엘리트체육을 살아가게 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운동선수의 운동능력은 재산권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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