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목표가 정말 미래를 만들까?

이치로 선수가 드디어 메이저리그 통산 3천안타를 달성했다. 일본에서의 기록을 합치면 4천안타가 훌쩍 넘는 경이적인 발자취다. 문득 그가 3천안타를 목표로 삼고 야구를 해왔을지 궁금해진다. 이치로는 초등학교 시절에 이미 몇 가지 구체적인 목표를 세웠다고 전해진다. ‘계약금 1억엔을 받고 프로에 진출한다.’, ‘메이저리그로 진출해 MVP가 된다.’ 등이 당시에 적은 목표라고 한다.

얼마 전에는 오타니 쇼헤이 선수가 꼼꼼하게 정리한 64개의 목표가 화제가 되었다. 감독 교사의 지도로 작성한 그의 목표달성표에는 ‘프런트 스쿼트 90kg 달성하기’와 같은 경기력 향상을 위한 목표부터 ‘야구부실 청소’와 같은 인성을 가다듬기 위한 목표까지 구체적으로 나열되어 있다.

오타니가 어린 시절 적은 목표들이 현재의 엄청난 경기력으로 이어졌을 것으로 사람들은 추측한다. ‘선명하고 구체적인 목표’란 스포츠 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 있어 성공을 위해 반드시 품고 가야 할 필수 덕목으로 간주되곤 한다.

하지만 목표를 바라보는 그런 관점에 살짝 의문을 제기하는 의견도 있다. 일본의 코치이자 상담가인 히라모토 아키오는 ‘비전’이나 ‘목표’에 자극을 받아 성공하는 경우는 일부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목표라는 미래의 그림보다 하루하루의 ‘심리적 만족’에서 힘을 얻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히라모토 코치는 자신의 책 『목표없이 성공하라』에서 동기부여를 받는 방식에 따라 ‘목표추구형’과 ‘심리적 만족형’으로 구분한다. 그는 자신이 겪었던 코칭 경험을 토대로 목표추구형은 ‘결과와 가까워진 느낌’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다고 말한다. 반면 심리적 만족형은 ‘현재의 만족감’에서 에너지를 얻는다고 정의한다. ’10년 후에 메이저리그에서 신인왕이 되겠다’는 미래의 모습을 상상할 때 힘이 솟는 선수도 있고, ‘어제보다 타구속도가 빨라졌다’는 성취감으로 노력이 이어지는 선수가 있다는 것이다.

비즈니스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올해는 반드시 판매왕이 되겠다’는 뚜렷한 목표로 움직이는 세일즈맨도 있지만 ‘그저 오늘 만나는 고객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정성을 다하다 보니 최고의 자리에 오른 세일즈맨도 상당수다.

히라모토 코치는 이와 관련해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마쓰이 히데키의 일화를 소개한다. 마쓰이 선수가 평소 자주 가는 단골가게를 방문한다. 가게에는 마쓰이 선수가 적어놓은 목표가 벽 한쪽에 걸려 있다. 그는 그것을 보며 멋쩍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목표를 세워도 별로 의식이 되지 않네요.

실제로 그가 세운 목표들은 대부분 달성되지 않았다. 마쓰이의 좌우명은 일일일생(一日一生)이라고 한다. 하루를 온전하고 충실하게 산다는 의미다. (한자 일(一)에는 ‘하나’라는 뜻 외에도 ‘온전한, 모두’라는 의미도 있다.) 그가 미래의 꿈으로부터 에너지를 얻어 움직이기 보다 하루하루의 삶에 정성을 다하는 심리적 만족형에 가까웠음을 말해준다.

이렇듯 사람은 저마다의 고유한 방식으로 힘을 얻는다는 점을 이해하고 코치는 선수에게 다가갈 필요가 있다. 한편으로는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은 멋진 미래를 상상해 보도록 자극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선수들이 매일 조금씩 성취감을 맛볼 수 있도록 정교하게 훈련 프로그램을 고민해야 한다.

피아제의 인지발달이론에 따르면 대체로 12세 전후까지의 아이들은 목표라는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직 추상적이고 복합적인 사고를 하는 능력이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와 미래를 연결해서 사고하는 방법도 잘 모른다. 그저 지금 일어난 생각과 감정에 머무르는 것이 보통의 아이들의 사고 패턴이다. 그마저도 아주 잠깐일 뿐이다. 경기에서 지고 눈물 흘리던 어린 선수들이 밥을 먹으러 가서는 마치 1시간 전의 경기는 세상에 없던 일인 것처럼 장난치고 노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저것들은 분하지도 않나? 저래 가지고 야구선수 되겠어?” 하며 지도자나 부모들은 혀를 차지만 그건 미래에 비추어 현재의 의미를 해석하는 어른들의 사고 패턴일 뿐이다.

​야구선수가 꿈이라는 놈이 왜 연습을 그따위로 밖에 안해?
열심히 한다고 했잖아? 프로야구 선수가 목표라며?

그러기에 꿈과 목표를 앞세운 이런 말들이 아이들에게 실감나게 와닿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 아이가 한 때 초롱초롱한 눈으로 ‘야구선수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고 해서 그것을 아이의 내면에 가득 차 있는 간절한 목표로 간주하면 곤란하다. 나는 어린 아이들이 하는 그런 말이 ‘과학자가 되고 싶어요. 연예인이 되고 싶어요’ 하는 말처럼 그때그때 농도가 바뀌는 흐릿한 바램 정도로 여기는게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아이들의 발달 수준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른들은 자신들이 세팅해 놓은 꿈과 목표의 수준에서 너무 많은 것들을 아이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나 역시 부모로서 지난 날의 실수를 뼈저리게 반성한다.

수학자인 찰스 엘리엇 박사는 수학에 낙제하는 초등학생이 많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 난이도 있는 문제를 적절히 조절해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지 않는 교사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작은 성공경험의 반복을 통해 학생은 자신감과 도전정신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선수가 운동을 하는 목적을 잃어버린 듯한 모습을 보일 때 코치는 ‘꿈과 목표’를 앞세워 다그칠 것이 아니라 먼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이 선수가 요즘 운동을 하며 성취감을 느끼고 있을까?”

야구는 실패의 게임이라고 하고, 많이 깨져야 피가 되고 살이 된다고 하고, 참고 견뎌내야 한다는 말을 어린 선수들에게 남용하고 있다. 꿈은 아름답고 목표는 힘을 준다. 하지만 우리 유소년 스포츠는 꿈과 목표를 앞세워 어린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좌절과 상처를 주고 있다.

피아제의 인지발달단계와 유소년 스포츠코칭 (데븐 모건 드라이브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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