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집중하라는 말을 듣고 자란 결과 (조쉬 웨이츠킨)
벤치에서 경기에 집중하지 않고 있는 모습을 보면 많이들 야단을 치시죠? 그런데 잠시 그렇게 딴짓을 하며 몸과 마음을 쉬지 않으면 선수는 막상 필요한 순간에 집중력을 발휘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주의력도 체력처럼 정해진 시간에 쓸 수 있는 양에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휴식이 가져다 준 집중력
내 훈련을 담당했던 트레이너는 통찰력 있는 스포츠심리학자 데이브 스트리겔이었다. 그와의 대화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처음 그를 만났을 때 내게 던진 단순한 질문은 내 눈을 번쩍 뜨게 했다.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그가 불쑥 ‘조금이라도 휴식을 취하고 나면 정신집중이 잘 되냐’고 물었다. 단순하기 짝이 없는 이 질문이 내 수련을 극대화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해 주었다.
지난 경기를 되돌아 보니 경기가 잘 풀릴 때에는 한번 말을 놓는데 2분에서 10분 정도가 걸렸지만, 잘 안 풀릴 때는 20분이 넘도록 깊은 생각에 빠지곤 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오랫동안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부정확한 판단으로 이어졌으며, 설상가상으로 계속해서 시간을 오래 끌 때는 판단력이 현저하게 저하되는 경향을 보였다.
LGE의 스포츠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실제로 모든 훈련에서 수련자들은 일정한 회복기를 가진다는 것이 가장 뚜렷한 특징으로 나타났다. 휴식시간을 잘 활용하는 선수는 위험한 고비의 순간이 닥쳐와도 거뜬히 극복해낼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체스경기 내내 정신을 집중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애쓸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듯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체스 스타일에 있어서 제일 먼저 변화가 일어난 것은 말을 움직일 차례가 아닐 때 경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었다. 상대가 생각하는 동안 말의 진로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봐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경기 도중 수시로 긴장을 풀었다. 다음 말을 어디에 놓을지 대충 생각하거나, 체스판에서 일어나 물을 마시거나 세수를 했다. 그런 다음 에너지를 재충전시켜 다시 체스판으로 돌아가 앉았다. 이렇게 하자 효과가 금방 나타났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14분 이상 생각을 지속하면 종종 같은 생각을 반복하고 오히려 정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런 패턴을 깨달은 후 말의 진로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적절히 안배하는 법을 배웠다. 경기를 하다가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하면 다시 정신을 집중하기까지 잠시 마음의 긴장을 풀었다. 그러고 나면 위기가 찾아와도 30~40분 동안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 약간의 휴식만 취한다면 다시 집중력을 회복하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스트레스와 회복의 선순환
진정으로 자신의 실력을 향상시키고 싶다면 긴장상태와 회복의 리듬을 생활의 모든 면에 적용시켜 보라. 실제로 나의 배움의 기술은 모두 회복훈련에 기초를 두고 있다. 회복훈련은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다양한 경험들 사이에 존재하는 인위적인 장벽을 부수고 경험들을 서로 연결하는 다리역할을 한다. 따라서 책을 읽다가 초점이 흐릿해지면 책을 내려놓고 잠시 깊은 심호흡을 한 다음 다시 책을 집어들어보라. 일하는 도중 정신적인 에너지가 고갈되는 느낌이 들면 잠시 일을 내려놓고 세수를 해보라.
그리고 하루에 몇 분 동안 명상의 시간을 가져보라. 명상은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정신을 집중하고 긴장을 푸는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육체적 수련을 통해 정신적 영역과 교통하는데 도움이 된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긴장을 완화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무의식세계에 들어가는 중요한 첫걸음이다.
늘 집중하라는 말을 듣고 자란 결과
큰 타이틀이 걸려있는 시합에서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할 때 가장 큰 장애가 되는 것은 다시 정신을 집중할 수 없을까봐 불안한 것이다. 어린시절부터 줄곧 이런 불안감에 사로잡혀왔다. “집중하라”는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딴전피우다가 혼난 아이들은 자라면서 무의식적으로 집중하지 않는 것을 ‘나쁜 행동’이라는 죄의식과 연결짓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어떤 일에 지나치게 몰입한 나머지 극도의 긴장상태 속에서 녹초가 된다.
난 경기에서 이런 경험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학생체스선수권대회에 출전하던 초기에는 아버지의 도움으로 효과적으로 체력관리를 할 수 있었다. 그 시절 난 아버지와 함께 밖에 나가서 놀거나 낮잠을 잤다. 덕분에 체력을 적절히 안배하여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코치와 부모들은 아이들로 하여금 라운드와 라운드 사이에 경기내용을 분석하도록 강요하며 매순간 긴장을 늦추지 말라고 당부했다.
많은 선수들이 한 시합이 끝나고 다음 시합을 준비하기 위해 휴식을 취하는 시간에 에너지를 소모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자살행위다. 요즘 학생대회에 가보면, 2시간의 경기가 끝난 직후 다음 시합을 위해 휴식을 취하는 1시간 동안 학생들에게 체스 기술에 대해 일장연설을 하면서 부모들에게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는 코치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러지 마시라. 휴식시간엔 아이들을 쉬게 하자. 휴식은 벼락치기 공부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고수들 간의 경기에서 회복능력은 승패를 가늠하는 잣대가 된다.
무술도 예외는 아니다. 최고의 기량을 가진 선수들일수록 경기 시작 전 대기시간 동안 초조해하거나 자세를 흩트리지 않고 기다린다. 초짜들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차례가 돌아올까봐 바짝 긴장하며 안절부절못하지만 경험 많은 선수들은 긴장을 푼 채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낮잠을 잔다. 경기 전에 쓸데없이 에너지를 소모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기다림에 익숙해야 한다. 아니 기다림 자체를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조쉬 웨이츠킨 <배움의 기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