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춰 잡는 피칭이 투구수를 줄인다는 오해

mlbpark에 맞춰 잡는 피칭이 정말 투구수를 줄이는지 분석하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기존의 통념을 뒤집는 해석이라 나눠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인플레이된 타구가 어떤 결과를 내는지는 운이 가장 큰 역할을 한다는 BABIP 개념을 믿는 편이라 이런 해석이 와닿네요.^^ (출처 : mlbpark)

참고로 황규인 기자님의 블로그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습니다. 함께 보시면 좋겠네요.

어떤 투수가 맞혀 잡는 투수인가?

맞혀 잡는 투수에 대한 오해와 이해


맞춰잡는 피칭으로 투구수를 줄인다고?

“삼진을 잡기보다는 맞춰잡는 피칭으로 투구수를 줄여야 한다.”

오후에 국내야구를 보거나, 혹은 오전에 MLBTV 대신 엠스플로 메이저리그를 즐기다보면 셀 수 없이 들을 수 있는 말입니다. 중계 뿐이던가요?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는 기사에서도 ‘맞춰잡는 효율적인 투구로 투구수를 줄여~’ 등의 표현은 안 쓰이는 날이 더 적을 정도입니다. 헤비하게 야구를 보는 사람들은 이미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걸 잘 알지만, 일반적인 팬들은 여전히 삼진을 많이 잡으면 투구수가 늘어나고, 맞춰잡는 피칭, 즉 pitching to contact를 해야 투구수를 줄이고 더 많은 이닝을 소화한다고 생각합니다.

‘삼진은 무조건 공을 3개 이상 던져야 하지만 맞춰잡는 피칭을 하면 공 1~2개로 타자를 잡아낼 수 있기에 더 효율적이다.’라는 말은 얼핏 듣기엔 매우 합리적으로 들립니다. 그러나 정말로 맞춰잡는 피칭은 투구수를 줄여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닙니다.’

2004~2013년 10년간 메이저리그에서 규정이닝을 채운 모든 투수들의 기록을 바탕으로 이닝당 투구수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록들을 찾아봤습니다.


먼저 Contact%와 이닝당 투구수의 관계입니다.

1

저 둘의 상관계수는 -0.14가 나옵니다. Contact%가 높을수록, P/IP가 미세하게 떨어지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통계적으로 무시해도 될 수준이며 상관관계가 거의 없다시피 한 수준입니다. 실제 그래프를 보더라도 X축의 Contact%와, Y축의 이닝당 투구수는 거의 관계가 없어보입니다. 이는 타자에게 컨택을 많이 허용한다 해서 투구수가 줄어든다고 볼 수는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어떤 변수들이 투구수와 관련이 있을까요?

퀴즈1) 위 그래프에서 컨택 비율이 90%가 넘어가면서, 이닝당 투구수가 12개가 살짝 넘는 해설위원들이 본다면 우주 최고의 투수라고 생각될만한 투수가 하나 있습니다. 저 투수는 누구일까요?(퀴즈 정답은 맨 아래에 있습니다.)


이번엔 K%와 이닝당 투구수의 관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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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둘의 상관계수는 0.15가 나오네요. 위와 마찬가지로 통계적으로 무시할만한 수준입니다. 즉 삼진을 잡는다고 해서 투구수가 불어나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위 표본에서 K% 상위 10%에 해당되는 투수들의 이닝당 평균 투구수는 15.88개였습니다. 범위를 상위 20%로 늘린다면 15.82개가 됩니다.

반대로 K%가 떨어지는 하위 10%의 투수들이 한 이닝을 소화하면서 던지는 공 갯수는 평균 15.57개였으며 범위를 하위 20%로 늘린다면 15.62개가 되었습니다. 차이가 아예 없는건 아니지만 K% 상위 10%에 드는 투수나, 하위 10%에 드는 투수나 완투를 한다는 가정하에 투구수의 차이는 3개도 나지 않을 정도로 미미한 수준입니다.

도대체 왜 그런걸까요? 바로 BABIP 때문입니다.

BABIP의 발견은 패러다임을 바꾼 위대한 발견이었습니다. ‘메이저리그 투수들에게 인플레이가 된 타구가 안타가 되는 것을 통제하는 능력의 차이는 사실상 거의 없다.’라는 터무니없어 보이는 이 주장은 이제는 정설로 받아들여지면서 FIP과 같은 인플레이 된 공이 피안타가 될 확률을 중립화 시켜 투수의 퍼포먼스를 평가하는 기록들이 널리 쓰여지게 되었습니다.

그럼 투구수와 BABIP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간단합니다.

퀴즈2) 위 그래프에서 맨 오른쪽에 위치한 점. 2004~2013년의 투수 중 가장 높은 K%를 마크한 투수는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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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래프는 참 의미없는 그래프입니다. 더 많은 타자를 상대하게 되면 더 많은 공을 던진다는 소리는 유치원생도 이해할 수 있는 소리니까요. 명제가 참이면 그 명제의 대우도 참인법. 적은 공을 던지려면, 더 적은 타자를 상대하면 됩니다.

삼진은 낫아웃 출루가 아닌 이상 타자의 출루를 원천 봉쇄하는 아웃입니다. 그러나 맞춰잡는 피칭으로 공이 일단 인플레이가 되고 나면 그 타구가 범타가 되고 아웃이 되는건 투수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이며, 그 타구가 안타가 된다면 결국 상대하는 타자의 수가 늘어나게 되어 투구수가 늘어나는 것이죠.

그리고 맞춰잡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해서 타자가 초구를 칠거란 보장은 아무데도 없습니다. 작년 메이저리그 타자들은 27%의 초구에 방망이를 휘둘렀을 뿐입니다.

위에서 알아본대로 삼진을 잡으나 맞춰잡으나 투구수에 미치는 영향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야구를 보다보면 분명 공을 많이 던지면서 마운드에서 육수를 줄줄 흘리는 투수와, 공을 적게 던지면서 더 많은 이닝을 소화하는 투수가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투수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투구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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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문제였을겁니다. 답은 볼넷입니다. BB%와 이닝당 투구수의 상관계수는 무려 0.72로 매우 높은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당연할거에요. 볼넷은 아웃카운트가 늘어나지 않기에 상대하는 타자의 수를 그만큼 늘려주며, 볼넷이라는 이벤트의 특성상 최소 4개 이상의 투구수를 필요로 합니다.

이번엔 BB%가 높은(볼넷을 많이 허용하는) 상위 10% 투수들의 평균 이닝당 투구수를 볼까요? 16.96개입니다. 반대로 볼넷을 적게 내주는 볼넷 비율 하위 10%에 드는 투수들의 평균 이닝당 투구수는 14.77개에 불과합니다. 앞서 삼진의 경우에는 상위 10%나 하위 10%나 9이닝당 투구수의 차이가 3개이하였지만 이번엔 무려 19.71이라는 차이가 나게 됩니다.

퀴즈3) 위 그래프에서 가장 많은 이닝당 투구수를 가진 선수(거의 19개에 육박하는 가장 높은 곳에 계신 분)는 누구일까요?

‘삼진을 잡기보다는 맞춰잡는 피칭으로 투구수를 줄여야 한다.’ 라는 소리는 헛소리입니다. 투구수를 줄이려면 삼진을 줄여야 하는 것이 아니라 볼넷을 줄여야 합니다. 또한 투수가 마운드에 오르는 이유는 한정된 투구수에서 최대한 많은 이닝을 소화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투수가 마운드에 오르는 이유는 실점을 막아내기 위해서죠.

그리고 삼진 비율 상위 10%에 드는 선수들은 하위 10%의 선수들보다 훨씬 더 적은 점수를 내줍니다. 이건 굳이 재미없는 숫자를 이용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네요.

K% 상위 10%에 드는 선수들의 리스트 중 일부는 아래와 같습니다:

Randy Johnson, Pedro Martinez, Roger Clemens, Johan Santana, Felix Hernandez, Cliff Lee, Tim Lincecum, Clayton Kershaw, Jake Peavy, David Price, Max Scherzer, Justin Verlander, Zack Greinke, R.A. Dickey, C.C. Sabathia………. 도대체 사이영 상이 몇 개나 되는거죠?

그리고 그 흔한 사이영 상도 타보지 못해 위 리스트에 들지 못한 선수들 중 일부는 이렇습니다.:

Yu Darvish, Jose Fernandez, Mark Prior, Matt Harvey, Stephen Strasburg, Jason Schmidt, Anibal Sanchez, Jon Lester, Chris Sale, Josh Johnson, Cole Hamels, A.J. Burnett, Mat Latos, Ben Sheets…………….

위 선수들보다 커크 뤼터, 리반 에르난데스, 애런 쿡, 존 래넌, 호세 리마, 카를로스 실바, 케니 로저스, 폴 버드, 브론손 아로요, 트레버 케이힐 등등이 더 좋은 투수라고 생각하신다면, 삼진을 줄이고 맞춰잡는 피칭을 해야한다고 주장하셔도 좋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저 헛소리를 들을때마다 이렇게 대답해주시면 됩니다.

“It’s base on balls. Stupid!”

퀴즈4) K% 하위 10%에 드는 투수 중에서도 사이영 위너가 딱 한 명 존재합니다. 04~13년 사이에 탄 것은 아니지만 이 선수는 전성기때도 삼진을 많이 잡는 선수가 아니었는데요. 이 선수는 누구일까요?

퀴즈 정답
1) 2005년의 카를로스 실바
2) 2013년의 유 달비쉬
3) 2004년의 알 라이터
4) 탐 글래빈

맞춰 잡는 피칭이 투구수를 줄인다는 오해”의 4개의 댓글

  • 2016년 2월 1일 1:1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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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읽었습니다.
    혹시 데이터의 출처와 Contact%의 계산 공식을 알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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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년 2월 2일 9:5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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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에 적은 것처럼 다른 사이트에서 옮겨온 내용입니다. 아마 mlbnation에 원문이 있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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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년 6월 17일 7:0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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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의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근데 소위 ‘맞춰 잡으라’는 말은 제구가 흔들리는 투수에게 ‘맞아도 좋으니 편하게 던지라’는 격려의 의미로 쓰이는 말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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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년 6월 19일 5:3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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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저도 퍼온 글이라 말씀을 드리기가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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