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를 지배하는 운의 세계

이번 주 야구친구 칼럼입니다. 한 경기가 끝나면 이래서 이겼다든지 저래서 졌다든지 하는 이야기가 무성하죠. 저는 그런 이유들을 거의 믿지 않는 편입니다. 야구는 참 지랄맞은 운동이에요.^^

 

야구를 지배하는 운의 세계

(야구친구 http://www.yachin.co.kr/w/73/58)

 

2대5로 뒤진 채 맞이한 9회초, ‘염소의 저주’를 다시 한번 떠올릴 수 밖에 없는 암울한 상황에서 시카고 컵스의 간판타자인 크리스 브라이언트의 타구가 내야수 사이를 가까스로 빠져나간다. 올해 메이저리그의 평균 타구속도인 89.57마일을 훌쩍 넘어서는 94.4마일로 내야를 빠르게 벗어나는 타구였지만 조금만 옆으로 지나갔다면 땅볼로 아웃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컵스에게 주어진 첫 번째 행운이었다.

이어진 리조의 볼넷과 조브리스트의 2루타로 한 점을 쫓아간 상황에서 겁없는 젊은 포수 콘트레라스의 타구가 다시 한번 땅볼이 된다. 이번에는 리그 평균의 타구속도인 89.8마일로 투수 옆을 스치며 중견수 앞으로 굴러간다. 컵스에게는 두 번째 행운이 주어진 순간이다.

샌프란시스코의 송구 실수로 맞이한 1사 2루에서 이번에는 하비에르 바에즈의 땅볼 타구가 나온다. 시리즈 내내 화려한 수비와 자신감 넘치는 리액션으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한 푸에르토리코의 젊은 내야수는 노볼 투스트라이크로 몰린 위기 상항에서 바깥쪽 낮게 제구된 공을 특유의 두려움 없는 스윙으로 걷어낸다. 배트 끝에 걸린 타구는 71.9마일의 느린 속도로 2루 베이스쪽으로 굴러갔고, 힘 없이 굴러온 공을 잡은 중견수는 2루주자가 홈으로 들어가며 역전이 되는 모습을 맥없이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괴물 채프먼의 KKK로 경기는 드라마틱하게 끝나고 시카고 컵스는 챔피언십 시리즈에 진출한다. 만약 9회초에 나온 땅볼 타구 중 단 하나라도 야수 정면으로 향했다면 두 팀의 운명은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조 매든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하늘이 도와God bless 역전을 할 수 있었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영상보기) 믿을 수 없는 컵스의 대역전

배트도 둥글고, 공도 둥근 야구에서 운은 실제 매 경기 매 상황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레너드 코페트는 <야구란 무엇인가>에서 야구에서 운과 불운을 거론하는 것을 금기로 여기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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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자에게는 변명으로 비치고 승자에게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관중이나 전문가들은 운이라는 것이 질서정연한 세계에 쓸데없이 끼어들어 논리를 흐려 놓는 훼방꾼으로 여긴다. (중략) 이미 지나간 일에 끼어들었던 운을 지나치게 집착하다 보면 의지력을 발휘하거나 정상적인 생각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장래를 설계하는 데에는 운을 계산에서 빼버려야 한다. 그렇지만 운은 실제로 거의 모든 경기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사실 우리가 야구라는 스포츠를 보며 즐기게 된 것도 어찌보면 운이라고 할 수 있다. 일상의 삶 속에서 성공에 겸손하고 실패에 지나치게 좌절하지 말아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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