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조건이 그들을 더 스마트하게 만들었다” (토아일당)

미주리대 야구팀의 극적인 변화를 일으킨 힘은 재능과 열정을 가진 ‘너드’의 존재였다. 야구 통계에 매료된 대학생과 메이저리거 출신이지만 은퇴 후 수학교사를 했던 한 코치가 만났다. 과연 그들은 어려운 조건의 대학야구팀을 어떻게 변화시켜 나갔을까.

​맷 케인(Matt Kane)은 야구 통계에 매료된 흔한 야구팬이었다. 어려서부터 야구 기록에 관심이 많았고, 빌 제임스와 마이클 루이스의 책을 읽으며 세이버메트릭스, 머니볼의 아이디어를 접했다. 그가 경제학, 통계학, 수학 3중 전공으로 미주리대학에 입학한 것이 2016년이었다. 미주리대학은 NCAA 디비전1에 속하는 스포츠 명문이고 당연히 야구팀도 있다. 그해 사이영상 수상자 맥스 슈어져가 미주리대 출신이다. 하지만 2012년 Big 12를 떠난 후 성적은 대체로 부진했다.

​미주리대 야구팀의 극적인 변화

​같은 해 헤드코치 스티브 비저가 부임했다. 메이저리거 출신이지만 메츠에서 47경기, 피츠버그에서 13경기를 뛴 정도다. 선수 경력보다는 은퇴 후 수학교사를 겸하며 고교야구팀 감독을 맡아 2번의 주 챔피언을 따낸 경력이 더 의미있다.

새로운 헤드코치의 최우선 목표는 팀의 공격력 향상이었고 그것을 위해 선택한 수단은 트랙맨 레이더 도입이었다. 2015년부터 메이저리그 전 경기를 커버하기 시작한 투구/타구 추적 테크놀러지였고 대학야구에서는 UCLA가 가장 먼저 사용하고 있었다. 새로운 기술은 당연히 유용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미국이라도) 대학야구팀은 메이저리그팀이 당연히 갖고 있는 데이터 분석인력을 갖고 있지 않았다. 숫자쟁이 야구팬 맷 케인이 야구팀에 합류한 배경은 이러하다.

​맷 케인은 매주 25시간을 야구팀 일에 쏟았다. 경기가 있을 때는 야구장에서 실시간 데이터 수집을 맡았고 선수, 코치들과 토론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밤늦게까지 수집된 데이터를 분석하고 팀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보수는 없었다. 케인은 그 일을 별난 취미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야구를 좋아했고 미국의 평범한 소년들처럼 리틀팀에서 야구를 했었다. 다만 그의 재능과 비전은 데이터에 관한 것이었고 그것을 스포츠에 연결시키고 싶었다. 학교 야구팀에서 그가 하려던 일이 정확히 그랬다.

​미국의 대학스포츠는 프로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며 예산도 많다. 다만 미주리대는 여러 가지 어려움에 직면해 있었다. 그들이 속한 South Eastern Conference(SEC)는 디비전1에서도 가장 경쟁이 치열하다. 그리고 미주리대학은 SEC 대학 중 가장 북쪽에 있었는데 이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플로리다 대학팀은 1월에도 야구를 하지만 미주리는 3월까지 눈이 온다. 이런 환경은 선수들 훈련을 어렵게 할 뿐 아니라 좋은 신입생 을 유치하는 데도 치명적 핸디캡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도전을 시작했다.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The MVP Machine》의 표현을 빌자면

“어려운 환경은 그들을 스마트하게 만들었다.”

코치의 아이디어에 맞게 데이터를 뒤지고 가공

​타격코치 딜런 로손(Dillon Lawson)은 맷 케인의 도움을 받아 인상적인 훈련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복잡하지 않다. 타석에 선 타자가 로케이션, 볼 카운트에 따라 어떻게 플레이하는지에 따라 점수를 매긴다. 존 안쪽의 공에 배트를 내면 플러스, 존 밖의 공에 배트를 내면 마이너스다. 배팅결과가 좋거나 나쁜 것을 상관없다. 공의 위치와 볼카운트에 따라 플러스 마이너스 점수가 달리지고 결과는 매 경기마다 업데이트 되어 공개된다. 코치는 선수들의 변화를 모니터했고 도움과 개입이 필요한 선수가 누구인지 지켜볼 수 있었다.

​트레이 해리스(Trey Harris)는 새로운 미주리대 야구 팀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를 경험한 선수다.

“제 목표는 매 게임에서 그린 존(플러스점수를 얻을 수 있는 구역)을 잡는 것입니다. 그린 존에 집중하기 시작하자 자연스럽게 더 좋은 타격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새로운 시스템 덕분에 내가 어떤 공을 때렸는지 내가 어떤 공을 놓쳤는지 비로소 알 수 있었습니다. 이건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게임 안에서 또 다른 게임을 하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는 178cm의 다소 작은 체격이었지만 강하게 때리는 데는 자신이 있었던 타자였고 고교 시절 평가 역시 굉장히 좋았다. 하지만 대학야구 에 와서는 제대로 된 타격을 하지 못했다. (1학년 0.263/0.307/0.376 4홈런, 2학년 .213 /.299/.290 홈런1개) 특히 삼진이 너무 많았다. 팀의 새로운 프로그램을 활용하면서 성적은 완전히 달라졌다. (3학년 0.268/0.388 /0.508 12홈런, 4학년 0.316/0.418 /0.500 11홈런)

​시간이 지나면서 또 다른 맷 케인들이 팀에 합류 했다. 5명 규모의 분석팀이 만들어졌고 첫 번째 맷 케인이 이끌었다. 트랙맨 뿐만 아니라 Blast Motion, KVest, Rapsodo, Diamond Kinetics, Game Sense Sports, HitTrax 같은 새로운 기술을 선수 육성에 활용했다. 다만 변화를 주도한 것은 이들보다는 코치들이었다.

​“모든 아이디어는 이미 코치 머릿속에 있었습니다. 저는 그에 맞게 숫자들을 뽑아냅니다. 마치 태엽인형 같았는데 코치들의 아이디어가 태엽을 감으면 저는 데이터를 뒤지고 그걸 가공해서 코치와 선수에게 전달했습니다.”

​팀 전체 공격력 역시 향상되었다. 2016 시즌의 최상위 타자 3명이 라인업에서 빠졌음에도 팀타율은 0.249에서 0.262, 출루율은 0.345에서 0.360, 장타율은 0.363에서 0.406로 올랐다. 특히 장타는 30%, 홈런은 70% 가까이 늘어났다.

메이저리그팀의 관심 “맷 케인은 언제 졸업합니까?”

미주리대학의 새로운 육성프로그램의 효과는 기존 선수들의 실력 향상에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메이저리그팀에게는 당연하지만) 대학 야구팀에서 찾아보기 힘든 ‘너드’(Nerds, 숫자와 컴퓨터에 빠진 야구 오타쿠) 보유팀이 되었기 때문이다. 고교선수들 대부분은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이는 미주리대학의 혁신적인 육성 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졌다.

​트레이 해리스는 대학 2학년 선수를 대상으로 하는 얼리드래프트에 참여하지 못했다. 부진했던 1, 2학년 성적으로는 가망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졸업 후 2018년 여름의 드래프트를 기다렸다. 그리고 고향 팀인 브레이브스로부터 32 라운드 지명을 받았다. 다소 늦은 순번이었지만 대학 첫 2년 동안의 성적으로는 꿈도 꾸지 못했던 기회다. (그는 2018/2019 2시즌 동안 브레이브스 산하 마이너리그 팀에서 뛰면서 0.317/0.395/0.480 ops.874를 기록 중이고 2020년 스프링 트레이닝에 논로스터 선수로 초청받았다.)

타격코치 딜런 로손는 2018년부터 뉴욕 양키즈의 타격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으며 투구인식(Pitch-Recognition) 훈련 분야에서 가장 인정받는 타격코치다.

​맷 케인은 변화를 함께 만들었던 미주리대 야구팀 멤버 중 가장 먼저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재학 중에 여러 메이저리그 팀으로부터 “이봐요, 맷 케인은 언제 졸업합니까?”라는 질문에 둘러 쌓였던 그는 2018년 1월부터 피츠버그 파일릿 츠의 데이터분석 인턴으로 일했고 2020년 졸업과 함께 정식 직원이 되어 데이터분석가로 활동 중이다. 스티브 비저는 여전히 미주리대 야구팀을 이끌고 있다.

한국에도 맷 케인 같은 ‘너드’들이 분명 있다

​물론 미국은 미국이고 한국은 한국이다. 한국의 어떤 아마추어팀도 NCAA 레벨의 예산 지원을 받지 못한다. 야구선수 저변은 비교조차 어렵다. 언뜻 보기에 미주리대 야구팀과 한국의 아마추 어팀 사이의 공통점이란 3월에도 날씨가 춥다는 것 말고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많은 예산과 좋은 장비는 당연히 유용하고 일을 쉽게 만들어주지만 변화를 만든 진짜 차이는 예산이나 환경에서 오지 않았다. 조건으로만 본다면 경쟁팀이 더 앞서 있었다. 하지만 뭔가를 이룬 것은 미주리대학 야구팀이었다.

수천만 원대의 트랙맨 레이더는 한국의 아마추어 팀에게 꿈도 못 꿀 장비다. 하지만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으며 프로팀들도 핵심장비로 활용하고 있는 포터블 투구추적시스템은 5000달러 수준 이다. 미주리대학에 사용했던 장비와 기술 중 어떤 것은 100만 원 이하이고 무료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스마트폰 앱도 있다. 만만하지 않겠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이미 몇몇 고교 야구팀에서는 이런 장비들을 사용하고 있으며 선수와 코치 모두 빠른 속도로 이에 적응하고 있다.

​몇몇 대학 스포츠팀들은 재학생으로 구성된 ‘프런트 동아리’와 협력하고 있다. 홍보와 미디어 분야가 주류다. 여기에 데이터분석이나 바이오 메카닉 분야가 포함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지난 가을 한 대학야구 감독님과 투구인식 같은 새로운 훈련프로그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 자원봉사 형식의 학생들이 팀의 데이터분석과 최신기술 기반의 훈련장비 운용을 돕는 시도에 대해 의논한 적 있다. 그야말로 ‘대환영’이라는 대답이었다.

2016년 미국의 돈 많은 대학야구팀이라도 분석 인력이 없었던 것은 한국의 대학팀과 다를 게 없었다. 새로운 시도가 낯설고 부담스러웠던 것도 같다. 한국의 대학에도 맷 케인만큼의 재능과 열정을 가진 ‘너드’들이 있다. 한국의 아마추어 야구팀에도 스티브 비저나 딜런 로손과 같은 비전을 가진 코치들이 있다.

​한국 아마추어 야구의 조건은 미주리대학의 그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그런데 “(미주리대학의) 어려운 조건이 그들을 더 스마트하게 만들었다.” 그런 관점이라면 우리 야구와 미주리대학 야구의 공통점은 생각보다 훨씬 많다.

글 : 신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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