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트사인이 속박이라고 느껴질 때

“다들 자신이 감독과 코치한테 속박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 오늘도 다들 라커룸에서 불만을 말하고 있었어. 이기지 못하는 건 그것 때문이라고. 그게 해보려는 마음을 사라지게 한다고.”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모르겠어. 분명 아무도 모를 거야. 감독님도.”

“어떻게 하면 속박당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경기를 할 수 있을까요?”

“사인 같은 건 없애버리는 거지. 20년 전의 야구처럼.”

“알았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갑자기 변했다. 그리고 여태까지 잡고 있던 손을 놓더니 뒷걸음질쳐 몸을 뒤로 뺐다.

“우린 카펫이나 식탁보 사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에요. 하지만 그런 식으로 당신이 이야기를 한다면, 팀이 이런 식으로 되어버린 게 누구의 탓이라고 생각한다는 말 같은 건 앞으로는 하지 말아줘요. 혼자서 투덜대고 있으면 족해요. 당신 팀이 이런 지경이 된 게 당신 탓이라고는 아무도 말하지 않으니까요.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도 시간은 지나가요. 그리고 부상이 나으면 그라운드로 가세요. 그래서 20년 전의 야구를 당신 친구들과 함께 즐기세요!”

“당신을 무시하려고 그런 말을 한 건 아니야.”

“알고 있어요.”

“내 생각으로는, 야구를 하고 있는 이상 사인이라고 하는 건 있어야 돼. 그건 당연한 거야. 감독은 이기기 위해서는 그것이 최선의 방책이라고 믿고 작전을 내는 거야. 아이들도 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건 아니지만, 잘 맞아떨어지면 안 되는 것도 아니야. 속박당하고 있다는 따위의 생각을 하는 쪽이 잘못인 거야.”

“하지만 당연하다고만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해결책이 안 나와요. 계속 이기고 있을 때는 모든 선수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게 틀림없으니까요.”

“그러면 어떻게 하는게 좋겠어?”

“그걸 생각하는 거에요.”

확실히 그런 것이다. 다카하라는 여러 가지 상황에서 그 상황에 맞는 규제가 가해지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팀 동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속박당하고 있다고 그들은 느끼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당연하다는 말을 해봐야 무슨 효과가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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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하고 당신은 전혀 다른 사람이죠?”

“그렇지. 틀림없어.”

“그런데도 저는, 당신이 항상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 잘 알고 있어요. 당신이 아무 말도 안 해도요. 당신은 어때요? 내가 그러듯이 당신도 나를 이해할 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있고 말고. 자주 있지.”

“그럴 때, 당신은 저를 위해 무엇이라도 해주려고 하겠죠.”

“대부분의 경우는.”

“그럴 때, 당신은 나한테 속박당하고 있다고 혹시 생각하나요?”

“잠깐 기다려. 우리들은 부부지만 나하고 감독은 부부가 아니라구.”

“같은 거에요. 완전히 똑같은 거예요.”

“그럼 당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처럼 감독에 대해서도 생각하라고 말하는 거야?”

“그래요. 그러지 않으면 당신이 감독이 되어 보는 거예요. 타석에 들어서서, 중견수 수비 위치에서. 그래요, 사인을 기다리기 때문에 속박당한다는 생각 따위를 하는 거예요. 기다리지 않으면 되는 거예요. 사인이 나왔을 때는 이미 당신의 마음 속에서 완전히 준비가 갖춰져 있는 거죠.”

“그건 이상이야. 게다가 너무도 고상한 이상이야.”

다카하라는 시합 중에 몇 번인가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웬일인지 갑자기 머릿속에서 뭔가가 번쩍하며, 이 상황에서는 이것밖에 없다고 가르쳐주었다. 그러면 3루 코치가 정말로 그 사인을 보내왔다. 그럴 때, 그의 육체는 어떤 상황에서도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게 되었고, 자신에게 접근해 오는 것을 놀랄 정도의 재빠름으로 포착할 수 있었다.

수비를 하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무의식적으로 최선의 위치를 발견하고 거기로 가 있는다. 그러면 바로 그 뒤에 벌어지는 작전은 대체로 성공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적었다. 대부분의 경우 그는 벤치의 작전을 기다리고, 그것을 온몸의 말단 신경까지 구석구석 보내는데 시간을 허비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 작전에 대응할 수 있는 확률은 적어지고, 30퍼센트도 성공시키지 못했다. 번트를 댈 때조차 실패의 불안을 느끼고 몸이 굳어지는 걸 느꼈다. 그리고 그럴 때에 한해 자신이 속박당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었다.”

“당신이라면 할 수 있을 거예요.”

“내일, 이치가와한테 말해보지. 우리 좀 더 높은 이상의, 멋진 야구를 해보자고.

에비사와 야스히사의 소설 <야구감독> 231~237쪽에 있는 야구선수 다카하라와 그 부인의 대화내용입니다. 코치와 선수 모두에게 교훈을 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생각되어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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