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야구 에이스는 한 경기에 공을 몇개나 던질까?

우리야구 3호 (2020년 9/10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지난 6월22일 황금사자기 결승전은 강릉고와 김해고의 승부였다. 2회부터 등판한 강릉고 에이스 김진욱은 3대1 2점 우세를 갖고 9회 마지막 이닝을 지키기 위해 마운드에 올랐다. 이때까지 83개의 공으로 7이닝을 막았고 10개의 삼진을 잡았다. 투구수제한 105까지 22개가 남아 있었으니 여유가 있어보였다. 이날 김진욱이 김해고의 타자들에게 아웃카운트 3개씩을 뺏는데 필요했던 투구수는 기껏 12개에 불과했다.

하지만 김해고 타자들의 끈질김 때문인지 아니면 90개를 넘긴 19살 투수의 피로함 때문인지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아웃카운트 1개를 잡는 동안 1점을 내주고 남아있던 투구수 22개를 다 써버린 그는 마운드를 내려갔고 강릉고는 역전패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강릉고는 그러나 이어 벌어진 대통령배에서 결국 우승을 차지한다. 이때의 김진욱은 3회부터 던져 경기를 마무리했다.

투구수제한이 생기면서 고교야구는 이전과 달라졌다. 130개에서 105개로 한계투구수가 조정된 것이 2018년이다. 최종전에 오르기 위해 에이스를 써버린 팀이 에이스 없이 결승전을 치르게 되는 상황도 종종 생겼다. 벤치의 전략도 진화한다. 에이스의 투구수를 조절하며 결승무대까지 팀을 이끄는 것이 감독의 중요한 역할이 되었다. 또 우승에 도전하려면 에이스를 받쳐줄 두번째, 세번째 투수의 육성의 중요성도 커졌을 것이다.

투구수 제한에 반대의견도 있다. 학생선수의 보호에 원칙적으로 동의하지만 기계적 투구수제한이 야구의 본질과 묘미에 반한다는 입장이다. 참고할 점도 있는 지적이다.

다만 “양쪽 다 나름나름 일리가 있다”로 그친다면 생산적인 토론은 더이상 이어질 수 없다. 실제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객관적 데이터는,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겠지만 적어도 더 나은 토론에 도움이 된다. 이 글은 답을 갖고 있지 못하다. 감히 답을 찾으려는 시도조차 할 수준이 못된다. 투구수와 선수보호에 대해서는 스포츠의학이나 트레이닝, 바이오메카닉 전문성이 더 필요할 것이다. 다만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리하는 것에 대해서는 야구통계의 몫이 있을 것이다. 우선은 그만큼이다.

첫번째 데이터는 한 경기에서 100개 이상 또는 135개 이상을 던진 비율이 어떻게 변해왔는지에 관해서다.

1995년부터 2019년 사이 두번의 중요한 제도변화가 있었다. 2014년에 경기당 130개 투구수제한이 도입되었다. 2018년에는 105개로 조정되었다. 위쪽의 푸른선은 전체 경기 중 한명이 투수가 100개 이상 던진 경기의 비율이다. 아래쪽의 주황색 선은 135개 이상 던진 경기의 비율이다.

2014년 이전 전체 경기 40% 전후로 양팀 투수 한명씩은 각각 100개 이상의 공을 던졌다. 10% 전후의 경기에서는 135개 이상을 던졌다. 투구수 제한이 도입되면서 이 비율은 급격히 하락한다. 흥미로운 점은 현재 투구수제한이 105개 이기 때문에 100개+ 피칭은 허용되어 있음에도 경기당 100개 이상 투구경기도 크게 줄었다는 것이다. 누적투구수 제한 때문이기도 하고 중요한 경기에 에이스 투수를 아끼기 위한 전략의 결과일 수 있다.

두번째 데이터는 3일 동안 150개 이상, 200개 이상을 던진 경우의 비율, 세번째 데이터는 5일 동안 200개와 300개 이상의 공을 던진 비율이다.

프로야구 선발투수들은 엄격한 관리 속에서 5일 로테이션을 돈다. 따라서 5일 동안 100개에서 120개 정도를 한계투구수로 인식한다. 단순하게 비교하긴 어렵지만 고교선수의 몸이 프로선수의 그것보다 더 단단하다고 가정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보면 투구수제한 이전의 고교야구 투수들은 3경기 중 1번은 3일 동안 150개 이상을 던졌거나 4경기 중 1번은 5일 동안 200개 이상을 던졌다. 2018년 이후에는 이런 경우가 거의 없다. 다만 2018년 이전에도 3일 150개+, 5일 200개+ 의 비율을 다소 줄어드는 추세였다.

2010년 이후 고교야구 경기수가 많이 늘어났다. (KSBA 홈페이지 경기기록 기준) 그리고 1경기에 등판하는 투수 숫자 역시 늘어났다. 투구수 제한의 당연한 결과일텐데 그 폭은 1990년대와 비교했을 때 대략 1.3배에서 1.4배 정도다. 경기수가 늘어났음에도 도리여 경기당 등판투수의 숫자가 늘어났으니 팀 에이스가 아닌 투수들의 투구이닝은 휠씬 더 큰 폭으로 늘어났을 것이다.

2015년의 통계에는 특이점이 있다. 경기수가 전후 연도에 비해 줄었음에도 경기당 등판투수 숫자는 그렇지 않았다. 또 3일 150구 이상, 5일 200구 이상이 비율이 전후 연도에 비해 일시적으로 상승했다. 혹 이것이 해당 년도의 대회일정과 관련된 것이라면, 경기당 투구수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볼 만 하다.

고교투수의 투구수는 아마추어야구에 별 관심이 없는 야구팬들에게 조차 논쟁적이다. 다만 단순한 투구수 숫자 만으로 섣불리 ‘혹사’라는 가치평가를 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많이 던지고도 건강하게 프로야구선수 커리어를 쌓아가는 경우가 있다고 해서 많은 투구수가 문제되지 않는다고 여기는 의견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어느쪽이든 객관적 증거에 기반한 토론이 필요하다. 야구를 오래 했다고 해서, 데이터를 다루는 기술이 뛰어나다고 해서, 또는 한 전문분야의 학위를 가졌다고 해서 정답이 보증되지 않을 것이다. 야구란 것이, 사람의 몸이라는 것이 그렇게 단순할 리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야구’에는 더 많은 재능이 필요하다. 그 재능이 잘못된 시스템으로 인해 다치고 좌절하지 않도록 지켜야 한다. 투구수 제한이든 뭐든 학생야구에 대한 합리적이고 정교한 정책이 귀한 재능을 보호하고 키우는데 도움이 되도록 뭔가 해야 한다. 그것이 야구로부터 받은 즐거움과 행복에 대해 우리가 갚아야 할 빚이다.

글 : 신동윤 (애슬릿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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