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돌보는 것도 재활과정의 일부다 (김병준)

야구공에 맞아 안와골절이 된 고등학교 타자가 있었다. 주말리그 타격상을 받을 만큼 좋은 감각이었지만, 부상 이후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데드볼에 대한 공포로 몸이 경직됐다. 복귀 후에 몇 달간의 노력으로 공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했을 때는 4년제 대학조차 제대로 갈 수 없었던 성적표가 놓여있었다.

고3 첫 전국대회 경기에서 팔꿈치 인대가 끊어져 수술할 수밖에 없었던 투수가 있었다. 여러 스카우터들의 관심을 받았지만, 부상으로 고교 마지막 시즌이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기량을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한 실패의 상처는 몇 년이 지나도 마음속 큰 응어리로 남아있었고, 작은 통증에도 예민해지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탄탄대로’를 걷던 선수가 부상으로 모든 게 틀어져 버렸을 때, 이 경험은 선수에게는 큰 트라우마가 된다. 오랫동안 꿈꿔 왔던 프로 지명과 진학이 달린 고교, 대학 선수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우리가 선수의 부상과 회복과정에서 간과하는 것이 있다. 선수의 감정이다. 공감이 가장 절실히 필요한 학생야구 현장에선 더욱 그렇다. 부상 직전까지의 스트레스, 부상 당시의 아찔한 기억, 통증의 고통, 혹사당한 분노, 재발의 두려움, 외로움, 복귀에 대한 조급함,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 예전 실력이 돌아오지 않는 답답함.. 학생 선수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무릎이 아픈데 말도 못 하고 런닝만 뛰는 게 너무 힘들어요. 야구 그만하고 싶습니다.”(초5)
“눈에 공을 맞았던 순간이 너무 아찔해요. 타석에서 발이 계속 빠지고, 땅볼이 두려워 제대로 수비도 못 하겠습니다. 근데 감독님은 왜 적극적으로 안 하냐고 소리만 질러요.” (중3)
“인대가 또 끊어질까 봐 전력투구를 못 하겠어요. 주변에선 이런 새가슴으로 어떻게 성공하냐고 핀잔만 줍니다. 근데 몸이 제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데 어떡하란 말이에요? 저도 정말 답답합니다.” (고2)
“동계훈련 때 실수가 잦아서 밤늦게까지 몇 박스씩 공을 던지고 잤어요. 그러면서 입스가 왔고, 제 자신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스트레스 받으며 시즌이 시작되었는데, 어깨가 너무 아파서 재활로 빠져야만 했어요. 저에 대한 원망, 입스의 불안함, 수치심,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 통증보다 마음이 더 힘듭니다.” (고3)
“경기 중인데도 실수했다고 욕하는 감독님, 항상 아이들 앞에서 소리 지르는 코치님, 경기에서 지면 쉬는 시간 없이 훈련해야 하는 분위기, 이런 환경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아프다고 얘기하겠어요? 몸이 보내는 통증 신호에 무감각한 게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죠.” (중학교 선수 학부모)

이런 환경은 중학교, 초등학교로 내려갈수록 더욱 심했다. 즐겁고 창의적으로 운동 해야 할 나이에 폭언과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아이들은 내면의 감각에 점점 무뎌지며 성장한다. 통증의 신호도, 감정의 상처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눈치만 보다가 도저히 혼자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빠진다.

공감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공감이 필요한 진짜 이유는 내 안에 요동치는 감정과 통증 신호에 내면 감각을 깨우는 것이다. 그러면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잘 알아차리고 해결해 나가는 능력을 키우게 된다. 내면을 자각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결과로서만 고치려고 하면 안 된다.

그렇다면 어디에서도 공감을 받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선수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부상이나 심리적인 문제로 감정조절의 어려움을 겪는 선수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감정치료이다. 생각과 사고를 억지로 바꾸는 것보다 과거 해소되지 않은 감정을 먼저 비워내면 멘탈 관리가 훨씬 쉬워진다. 감정을 정화하는 방법에는 EFT(Emotional Freedom Techniques, 감정자유기법), 상처받은 내면 아이 위로 기법, 수용과 자기 사랑 확언법이 있다.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해도 충분히 쉽게 배울 수 있고, 시간과 공간에 제약 없이 선수가 스스로 할 수 있는 방법들이다. 과거의 억압된 감정이 풀리면 선수는 자연스레 현재 상태에 집중하게 된다. 호흡훈련과 명상을 같이 한다면 마음 회복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두 번째, 선수에 대한 전인격적인 공감이다. 운동 외적인 부분도 충분히 공감해줄 필요가 있다. 선수가 자주 느끼는 불안의 뿌리는 어디인지, 통증 신호를 억누르는 습관은 언제 시작되었는지, 빨리 복귀해서 인정받고픈 욕구의 심연에는 어떤 과거의 내 모습이 있는지. 부정적인 감정의 근원을 하나씩 되짚으며 결핍된 부분을 공감해주다 보면 선수의 마음은 깊이 치유되기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선수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팀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인간의 욕구를 설명하는 이론 중에 심리학자 매슬로우(A.H. Maslow)의 욕구단계이론 있다. 하위 단계인 생리, 안전 욕구가 충족되면 상위 단계인 존중과 자아실현 욕구도 충족된다고 한다. 반대로 하위욕구가 제대로 충족되지 못하면 그것은 상위욕구의 정상적 발달에 걸림돌이 된다. 실수하거나 못해도 혼나지 않는다는 심리적인 안정감을 느끼면, 아이들은 자연스레 자신을 믿고 최대한의 잠재력을 발휘하는 욕구를 실현하게 된다. 강압적으로 몰아붙이지 않아도 스스로 꿈을 이뤄나가는 것이다.

지난번 야구선수 학부모 모임에서 한 초등학교 아이 어머님이 하신 말씀이 아직도 마음에 무겁게 남아있다.

“욕 안 하는 감독님, 좋은 코칭문화, 과학적인 트레이닝, 맞춤 지도.. 카페에 올라오는 이런 이야기가 너무 판타지 같이 들려요. 진짜 이런 환경에서 운동하는 학교가 대한민국에 있다는 말이에요? 우리 학교에선 상상도 못 할 일인데..”

판타지가 아니다. 관점만 바뀌면 충분히 실현 가능한 일이다. 지도자에 대한 경계가 없으면 선수는 자신의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힘든 감정을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안정감을 느끼고, 몸과 마음의 상처는 더욱 빨리 회복되기 마련이다. (끝)

격월간 우리야구 4호 (2020년 11/12월호)에 게재된 EFT스포츠심리센터 김병준 코치님의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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