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도로 여기는 것을 의심하고 타파한다” (오카자키 유스케, 다케다 고등학교)

(지난글 보기)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에, 같은 연습을 하는’ 관행을 따르지 않는다 (오카자키 유스케, 다케다 고등학교)

컬쳐 쇼크

고교야구의 상식을 뒤집는 다케다 고등학교의 방식은 오카자키 유스케 감독의 이색적인 경력으로부터 얻은 경험이 크다. 다케다 고등학교 야구부의 이념 첫 번째는 “왕도로 여겨지는 것이 있다. 항상 그러한 상식을 의심하고 타파한다”는 뜻의 ‘카운터 베이스볼’이다.

오카자키 감독은 히로시마 현내에서는 ‘왕도’라고 할 수 있는 전통의·히로시마상의 출신이다. 2학년 봄에 팀은 고시엔에 출전했지만 자신은 스탠드에서 응원을 했다. 마지막 여름에는 2루수 주전을 획득했지만 16강에서 탈락했다. 혹독한 훈련과 선후배 관계를 견뎠지만 고시엔 출전은 이루지 못했다.

그 후 일반 입시로 들어간 고베 학원대에서 외야수로 활약하고 사회인 야구팀 와이테크(지금은 없어짐)에서 2년간 뛰었다.

하지만 24세 때 ‘아무래도 프로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미국 야구에 도전했다. 빠른발을 살린 플레이로 애틀랜타·브레이브스의 일본 트라이아웃 최종 전형에서 아마추어 선수로는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미국으로 건너가 쇼케이스·트라이아웃에도 참가했다. 현지 독립리그의 프런티어리그 팀에서 뛰기로 결정됐지만 비자 발급에 문제가 생겨 귀국해야만 했다. 귀국 후에는 시코쿠 아일랜드 리그의 도쿠시마 인디고삭스에서 뛰다가 26세로 현역을 은퇴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특히 미국에서의 경험은 지금까지의 야구관을 완전히 바꾸었다.

“누구 하나 시들시들하며 야구를 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야구를 하는 스케일이 큰 야구였죠.”

은퇴 후에는 광고대리점에서 잠시 일을 했다.

“속성으로 사회경험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질적으로나·양적으로 모두 바쁜 나날을 보내며 야구로부터 멀어진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배들과 함께 들어온 식당 TV에서 고등학교 야구가 방영되고 있었다. 8점이나 앞선 팀이 보내기 번트를 하면서 선수들이 승리의 포즈를 하는 모습에 미국에서의 기억이 떠오르며 의심스러웠다.

“시시한 야구가 아닌가. 선수들은 정말 진심으로 승리의 포즈를 하는 건가?”

쓰쓰고의 돌직구 “일본의 지도자들이 아이들을 잡고 있다.”

하키부 감독으로 전국 8강!

스스로 이상이라고 생각한 야구를 하고 싶어졌다. 공립학교의 사무와 이과실습 조수 일을 하면서 통신 과정으로 교직에 취직했다. 처음에는 교토에 있는 리츠메이칸 고등학교에 부임했다. ‘프로야구 경험자는 2년간 교단에 서지 않으면 야구 지도는 어렵다’는 규정이 있었다. 독립리그에서 뛴 경험이 있던 오카자키 감독은 그래서 처음에는 하키부를 지도했다. 2년 째에 하키부 감독으로 인터하이 8강을 이끌었다.

“너무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전문가분들께 자주 들었습니다. 그때도 데이터는 많이 수집했습니다. 예를 들면 상대의 센터 포워드가 둘러싸였을 때 어디에 패스를 했는지 등에 대해 철저하게 데이터를 모으거나 교체를 4명씩 계속 해나가기 위해 복수의 포지션을 연습시키거나 했습니다. 여름에 토너먼트 연속게임을 해야 하기 때문에 지구력을 키우고, 상대나 규칙에 따라 방식을 바꿔나가며 성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3년 만에 야구부 코치를 했다. 거기서 3년 계약이 만료되면서 오카자키 감독의 이색적인 경력에 관심을 가진 다케다 고교의 권유를 받고 부임했다. 2015년 여름 대회가 끝나고 감독에 취임했다.

전 감독에게 “바꿔도 괜찮습니까?”라고 물었다. ‘감독이 승낙하자 그 순간부터 확 바꿨다’라고 웃는다. 주변에서 “저런 건 야구가 아니야”, “뭐야! 그 스윙은!” 등등 말이 많았다. 묵묵하게 해냈고, 결과도 따라오기 시작했다. 그 후로는 아무도 말하지 않게 되었다.

(평소보다 가는 배트로 작은 공을 치는 연습)

무엇보다 홈런은 재미있다

IT나 데이터, 최첨단의 과학적 트레이닝을 시도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앞선 기사에서 소개했지만, 그것을 진행하는데 있어 목표 역시 확실히 내걸고 있다. 타자는 대외 시합에서 팀 200홈런, 투수는 구속 140km 이상이다.

타자의 홈런에 집착하는 것은 홈런이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무사에 주자가 나가고 아웃카운트 하나마다 한 루씩 진루를 시켜도 2아웃 3루 밖에 안됩니다. 어디선가 한 루 건너뛰기를 해야 합니다.”

한 루를 더 가기 위한 방식은 주로 도루나 좋은 판단으로 진루를 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다케다 고교는 평일 훈련이 50분 밖에 안 된다는 제약이 있다. 주자의 리드에도 다섯가지 종류의 사인이 있다고 이야기를 하고 주입시키고는 있지만 강팀을 상대할 정도의 무기가 될 때까지 주루 연습을 할 시간은 없다. 홈런을 만드는 능력, 장타력을 키우는게 가장 효율적인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홈런은 재밌다.

“왠지 ‘홈런을 치려고 하지 마”‘ 같은 생각이 일본에는 있습니다. 하지만 알 수 없거든요. 저도 발이 빨라서 고등학교 때는 늘 짧게 치면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거기에 대한 반동이 저에게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홈런은 본인도, 팀도, 관중도 행복하게 하는데 왜 고교야구에는 홈런이 적어야 하는 걸까요? (웃음) 돈을 내고 우리팀의 경기를 보러 와주십사 하는 바램도 있고, 어차피 우리 학교에는 타니오카(프로지명이 유력한 선수) 뿐이라고 생각하는 세상을 놀라게 하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작년 가을 약진의 이유도 첫 번째는 배팅이라고 이야기한다. 준준결승에서 패하긴 했지만 6경기에서 49득점을 하며 프로가 주목하는 148km를 던지는 가와노 게이를 무너뜨릴 수가 있었다.

(가을부터 주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고등 학교 통산 26홈런을 쳐낸 2학년 오노선수)

일본 스타일과 다른 타격 방식

타격지도도 기본적으로는 선수가 묻지 않는 한 가르치지 않는다.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은 주지만 이른바 왕도와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그 중 하나가 ‘하중荷重과 가중加重’의 차이다. 똑같이 ‘카쥬’라고 읽지만 의미는 다르다. 다케다 고등학교의 배팅에서는 가중을 중요하게 여긴다.

하중이란 ‘기계나 구조물의 전체나 부분에 가하는 힘’이라는 의미로, 뒤에서 힘을 모아 그것을 앞에 가지고 가며 공을 때리는 이미지다. 일본 타자의 다수가 사용하는 타격 방식이이다. 미국이나 남미 선수들이 잘 던지는 무빙볼(타자의 앞에서 움직임이 큰 변화구)에 잘 대처하지 못하는 요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편 가중은 ‘무게를 더하며 늘려가는 것’으로, 타격으로 치면 ‘고관절의 신전을 사용해 지면반력을 살리는’ 방식이다. MLB 대부분 선수들의 타격법이다. 변화구를 잘 따라갈 수 있게 되어 우리 선수들은 변화구에 더 많은 홈런을 만들어내는 상황이 됐다. 그동안의 이론대로라면 (우타자의 경우) 변화구는 뒷다리를 당기며 라이트 앞으로 치도록 했다. 상대는 우익수를 앞으로 당기며 수비를 하곤 했다. 그런 수비 뒤로 넘길 수 있게 되면 장타가 더 늘게 된다.

설명을 할 때는 오카자키 감독이 작성한 미일 타자의 비교 동영상을 선수들에게 보내고, 선수들은 그것을 아이패드로 보며 배우거나 스스로 질문을 해나가며 깊게 이해해 나간다.

한편으로 고교야구 특유의 속도가 느린 기교파 왼손투수를 상대하는 전술들도 준비하고 있다. 그것들 중 하나가 앞서 말한 다섯 가지 종류의 리드방법이다. 1루 주자의 리드로 아웃 코스의 직구를 던지게 하는 등의 리드 방법이다.

이와 같이 상대의 스타일이나 일반적 이론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에 대응해 나가는 것이 ‘카운터 베이스볼’의 진수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전통의 명문고에서 ‘왕도’를 접하고, 미국에서 컬쳐 쇼크를 받은 오카자키 감독이기 때문에 만들어진 생각이었다. 연습 중의 모든 폼을 촬영해 과제나 현상을 보기 쉽게 하고 있다.

하루 50분 연습으로도 충분하다

0 0 votes
Article Rating
Subscribe
Notify of
guest
0 Comments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
0
뭔가 의견이 있으시다면 댓글을 남겨주세요!x
()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