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적인 생각은 정말 도움이 될까?

아이들의 시합을 보다 보면 분위기가 침울하게 가라앉는 순간을 경험하게 됩니다. 에러가 연이어 나온다든지, 투수가 계속해서 볼넷을 내준다든지 하면 자연스럽게 아이들은 위축되고, 덕아웃에서도 응원의 함성 소리는 사라져 갑니다.

이럴 때 어떤 감독, 코치님들은 잘못이나 실수를 소리질러 야단치시기도 하고, 또 어떤 분들은 슬그머니 마운드로 올라와 아이들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격려하기도 합니다. 관중석의 부모들도 “괜찮아. 잘하고 있어.”라며 위로의 응원을 보냅니다.

제가 볼 때 어린 선수들은 어른들의 그런 노력에 그다지 영향을 받는 것 같지 않습니다. 실제로 아이들에게 시합이 끝나고 물어보면 감독, 코치님의 조언이나 부모의 응원이 솔직히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말하곤 합니다. 복잡한 생각과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있을 때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은 대부분의 어른들도 사실 잘 못하는 일입니다.

아직 감정을 다루는 데 미숙할 수 밖에 없는 어린 선수들은 그렇다 치고 실제 촤고의 경기력을 보여주는 프로선수들은 경기 중에 일어나는 감정을 어떻게 다룰까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이런 부분에 대해 심도있게 연구되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만 바다 건너 미국과 유럽 쪽에서는 운동 선수의 멘탈과 관련하여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연구논문들도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스포츠가 워낙 일상생활의 일부로 자리잡고 있다 보니 상담이나 코칭 분야의 접근법들도 스포츠 코칭에서 흘러나온 것들이 제법 많습니다. 그래서 스포츠 코치들은 시즌이 끝나면 여러 기업의 초대강사로 인기가 높은 편입니다. 상담과 코칭 분야의 필독서로 널리 알려져 있는 티모시 골웨이의 <이너 게임> 시리즈도 스포츠에서 발견된 통찰이 일반 코칭, 경영, 자기개발 분야로 전이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래 들어 조금씩 변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어찌되었든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선수가 자신에게 일어난 생각과 감정을 다루는 일이 ‘각자 알아서 이겨내야’ 하는 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불굴의 의지로 싸워서 이겨내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재무장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세뇌시키는 의지의 한국인 모드!

스포츠 심리 컨설턴트인 미첼 그린Mitchel Greene 박사는 하지만 그러한 노력이 별로 효과가 없다고 단호하게 이야기합니다. 많은 스포츠 심리학자들과 코치들이 선수들에게 긍정적인 생각을 주입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없애려 노력했지만 별로 소용이 없었다는 겁니다.

그린 박사는 만트라처럼 원하는 바를 주문처럼 외우고, 의지의 힘을 사용하면 생각이나 감정을 쉽게 바꿀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그게 그렇게 쉽다면 왜 주변에 그런 변화를 이끌어낸 사람을 발견할 수 없는겁니까?”

실제 탁월한 업적을 달성한 최고의 선수들도 실제로는 엄청나게 많은 부정적인 생각들을 경험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80년대에 3년 연속 뉴욕마라톤을 제패하였고 현재는 러닝 코치로 활동하고 있는 알베르토 살라자르Alberto Salazar가 하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의심과 불안은 계속 일어나는 겁니다.”

살라자르는 의심이나 불안과 싸워야 한다거나 없애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 부정적인 생각들을 불굴의 의지로 극복하고 이겨냈기 때문에 자신이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살라자르는 자신이 말한 것, 즉 의심과 불안은 당연히 일어난다는 사실을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 거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는 부정적인 생각들과 싸우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400번의 철인3종경기(수영3.8Km, 사이클180Km, 마라톤42.195Km를 이어서 하는 경기)에 참가해 100회 가까이 우승한 스캇 틴리Scott Tinley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최고의 선수들에게서도 의심은 엄청나게 많이 일어난다.”

미첼 박사는 사람들의 편견을 말합니다. 최고의 선수들은 그런 부정적인 생각이나 감정의 방해가 없을 것이다. 혹시 있더라도 그것들을 강력한 의지로 이겨낼 것이다. 이런 편견입니다. 하지만 이는 현실과 완전히 다르며 많은 최고의 선수들도 매일 생각, 감정과 다투고 있다고 말합니다.

미첼 박사는 의심이나 불안이 올라올 때 그것을 ‘없애려고 하는’ 노력 대신 다른 방법을 추천합니다. 미첼 박사는 마음을 바꾸려는 노력 대신 ‘마음챙김Mindfulness’이라는 접근법을 권합니다. 이제는 많은 메이저리그팀과 여러 종목의 선수들이 멘탈 컨디셔닝을 위해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원래는 남방불교의 수행법이었으나 상품화와 실용주의에 능한 미국으로 넘어오며 일반인과 운동선수들을 위한 멘탈 컨디셔닝 도구로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마음챙김 접근법은 긍정적인 생각으로 부정적인 생각을 다스리려는 전통적인 방법과는 다릅니다. 긍정적인 생각으로 부정적인 생각을 덮어 버리려는 일체의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아래와 같은 마음챙김의 기본 원리를 따를 뿐입니다.

“내가 저항하는 것은 무엇이든 지속된다. 일어난 것을 있는 그대로 놓아둘 때, 그것 또한 나를 놓게 된다.”

“안되겠어. 못 이길 것 같아. 점수를 내줄 것 같아.” 이런 생각이 올라올 때, 자신도 모르게 자동반응하며 그 생각을 없애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니야. 난 할 수 있어. 이런 약한 맘을 먹어서는 안돼.” 이렇게 애써 긍정적으로 바꾸려는 노력을 그만두는 것입니다. 대신 그저 자신에게 그런 부정적인 생각이 올라왔음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아. 내가 지금 불안해 하고 있구나. 여기서 점수를 줄까봐 불안해 하고 있구나.”

자신도 모르게 불쑥불쑥 올라오는 의심이나 불안을 미첼 박사는 ‘마음의 재잘거림mind chatter’이라고 부릅니다. 길가에 서서 재잘재잘 떠들며 지나가는 아이들을 그냥 무심하게 바라볼 때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지나가며 재잘거림도 사라집니다. 아이들을 쫓아가지만 않는다면..

이 글은 Liberty Sports Magazine 2010년 7월 9일 기사 <The Myth of Positive Thinking>을 참고해 적은 글입니다. 
원문을 보시려면 http://www.libertysportsmag.com/2010/07/the-myth-of-positive-thin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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