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를 과학적으로 탐구한다는 것

과거에 야구선수라면 일단 무조건 뛰었다. 훈련 시작하기 전에 뛰었고, 마치고 나서도 뛰었다. 많이 뛰어야 체력이 좋아진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특히 어릴 수록 많이 뛰게 했다. 그래야 기초 체력이 좋아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미국이나 일본에서 야구를 하고 온 선수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서 보니 그 선수들은 우리나라만큼 런닝을 열심히 하지 않았다. 런닝보다 웨이트 트레이닝에 더 신경을 많이 썼다. 그러면서 체력에도 여러 종류가 있으며 야구에 중요한 체력적인 요소가 따로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야구에는 근력과 스피드가 가장 중요하며 그 중에서도 근력이 투수와 타자의 플레이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점이 스포츠 과학자들에 의해 밝혀졌다. 런닝을 오래 하면 오히려 근력을 떨어뜨리기에 컨디션 조절을 위해 런닝을 하더라도 장거리보다는 단거리 위주로 뛰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학교 운동장에서는 지친 몸으로 달리고 있는 선수들을 볼 수 있다. 지친 몸으로 오래 달릴 때 척추와 관절은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이는 장기적으로 부상의 원인이 된다고 트레이너들은 말한다.

정신력도 마찬가지다. 경기에서 져도, 삼진을 먹어도, 결론은 ‘정신력이 약해서’ 였다. 야구선수에게 정신력이라고 하면 대개 ‘투혼’과 ‘투지’로 상징되는 인내심 내지는 참고 이겨내는 극기심을 의미했다. 그래서 겨울이면 바닷물에 뛰어 들어갔고 산으로 올라 얼음물을 깨고 노래를 불렀다. 몸을 혹사시키고 그 상황을 버텨내는 것을 통해 정신력이 길러진다고 믿었다. 그렇게 얻어진 것이 야구에 필요한 정신력인지는 의문을 갖지 않았다.

지금도 1월에 전국의 바닷가에 가면 팬티만 입고 바다에 몸을 담그고 있는 야구선수들을 볼 수 있다. 최근 류중일 감독은 선수 시절 체험한 그런 훈련방식을 ‘쓸모 없었다’고 한 인터뷰에서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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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력도 체력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스텍트럼이 존재한다. 몸에 아드레날린을 분비시키는 화이팅 넘치는 투쟁심도 필요하지만, 긴장된 상황에서 흥분과 두려움을 가라 앉힐 수 있는 평정심도 멘탈 스포츠인 야구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또한 팀스포츠인 야구에서는 실수를 한 팀동료에 대한 따뜻한 연민의 마음도 정신력의 일부로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강함과 부드러움이 한 경기 안에서 모두 요구되는 것이다. 이영표 선수도 한 인터뷰에서 “부상당한 머리에 붕대를 감고 뛰는 것은 정신력의 일부일 뿐 전부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참고기사) 이영표, SNS에 “멘탈의 깊은 의미를 알라” 냉정한 글

그러면서 경기장 안에서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는 것도 멘탈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보스턴 레드삭스 구단은 department of behavioral health라는 별도의 부서를 만들어 선수의 멘탈을 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심층적으로 관리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곳에서의 주된 연구과제는 ‘Mindfulness를 어떻게 선수들에게 적용할 것인가’라고 한다. Mindfulness(마음챙김, 알아차림)는 남방불교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최근 상담과 심리치료 분야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도구다. 정신력을 ‘화이팅’적인 요소로만 제한하지 않는 움직임이라고 볼 수 있다.

과학적 사고라는 것은 첨단 IT 기기를 사용하가나 데이터를 활용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과학적 사고의 출발은 한자 과(科)의 뜻처럼 어떤 현상을 ‘나누어’ 살펴 보는 것이다. “이게 다 인가? 그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런 질문을 품고 탐구를 해나간 과학자들의 노력으로 문명은 발전해 왔다. 마찬가지로 체력과 정신력이라고 뭉뚱그려 단정짓지 않고, 야구에 필요한 체력은 무엇인지, 정신력을 구성하는 측면은 어떤 것들인지 보다 세밀하게 탐구해 나갈 때 우리의 야구 수준도 한층 높아질 것이다.

“코치의 일은 코칭을 없애는 것” (제리 와인스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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