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루남을 만든 마이너스 사고방식

일본 독립리그 고치 화이팅독스의 감독으로 우리나라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트라이아웃을 위해 한국을 찾은 고마다 노리히로 감독은 현역 시절 찬스에 강했던 타자로 알려져 있다. 일본 프로야구 최초로 데뷔 첫 타석에서 만루홈런을 때려내는 진귀한 풍경을 연출하기도 했고, 센트럴리그 전구단을 상대로 만루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만루에 강한 타자라고 해서 ‘만루남’이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는 고마다 감독에게 클러치 상황에서 좋은 결과를 냈던 이유에 대해 물었다.

그는 자신만의 ‘마이너스 사고방식’을 강조했다. 대부분 그런 상황이 되면 ‘나는 할 수 있어. I can’과 같은 긍정적인 다짐을 하지만 자신은 최악의 상황을 먼저 떠올렸다고 한다.

‘내가 여기서 삼진을 당하거나 아웃이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감독, 코치님도 아쉬워 하고, 부모님도 슬퍼하시겠지? 팬들도 ‘이 바보같은 놈’ 하면서 욕을 할꺼야. 응? 그게 다야? 별거 아니잖아?’

맹목적인 긍정의 언어를 스스로에게 주입하는 것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하는 고마다 감독의 관점에 광주 서석초등학교 양윤희 감독도 비슷한 의견을 덧붙인다.

“우리 때는 무조건 이겨내라고 했죠. “아이 캔 두 잇I can do it. 나는 할 수 있다. 최고보다 최선이다.” 그런 교육이 머리에 박힌거잖아요. 최근에 보면 이런 논문도 있더라고요. “괜찮다. 져도 된다. 못해도 돼.” 이것 또한 자기 컨트롤을 할 수 있는 또다른 방법이라고 하더라고요.

대기타석에서 긴장하고 있는 선수가 있으면 “너 보니까 2루 땅볼 치고 죽겠다.” 하고 툭 던져요. 그럼 애가 웃죠. 자기팀 선수가 죽겠다고 말하는 감독이 어딨어요. “그래 어차피 죽을 거 대신 편하게 쳐라. 2루 땅볼 쎄게나 쳐봐.” 이렇게 말해줍니다.

동기부여가 물론 중요하지만 선수가 압박감을 느끼고 있을 때는 잘될거라고 말하는 방식의 동기부여가 쉽지 않습니다. “

세계적인 골키퍼 빅토르 발데스는 자신이 중압감을 극복한 방법을 ‘메쏘드V’로 정리해 <중압감을 극복하라>는 책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 발데스 골키퍼 역시 ‘할 수 있어. 꼭 이길거야’ 등의 긍정적인 다짐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나는 최악이야. 내가 제일 못해’ 이처럼 자신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며 중압감에서 벗어난다고 한다.

소위말해 ‘부정적인 생각’을 활용하는 고마다 감독과 발데스 선수의 접근법이 효과가 있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낙관주의자는 비행기를 만들고, 비관주의자는 낙하산을 만든다’는 말처럼 긍정성과 부정성은 인간의 삶 속에서 저마다의 역할을 가지고 있다. 때와 장소에 따라 적절하게 활용하고 내려놓는 지혜가 필요하다. 결과적으로 그들에게는 긍정적인 선언이 불러일으키는 ‘느낌’보다 부정적인 생각을 통해 전해진 ‘느낌’이 긴장으로부터 벗어나는데 더 힘을 발휘했다. 말의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말에 연결되어 있는 ‘느낌’이 실제 부담감을 다루는데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멘탈훈련이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통한 관계맺기라면 ‘긍정적인 말, 부정적인 말’이라는 단순한 구분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언어 너머의 세계를 탐구할 필요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2016년 8월 <야구친구> 기고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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