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과도한 체력훈련은 감각을 죽인다 (김병곤)

Q 동계훈련 때 너무 많이 던져서 막상 시즌이 시작되면 힘을 못쓰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A 재미있는 일화가 있어요. 어느 고등학교팀이 전지훈련을 갔는데 2-3명이 두 달 정도 이곳에 남아 재활 훈련을 했어요. 전지훈련 가서 열심히 했던 선수들은 상당수가 탈락했고 여기서 훈련한 선수들이 살아 남았어요. 구단에서 난리가 났지요. 돈이랑 시간을 들여서 전지훈련 다녀온 선수들은 다 망가져있고 여기서 재활한 선수들은 날아다니고 있으니, 도대체 감독도 학부모도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 되어버린 것이죠. 제가 무슨 특별한 방법을 쓴게 아니거든요. 그냥 쉬게 해준거에요. 제가 있었던 LG도 그렇게 해서 힘든 시절을 보낸겁니다. LG가 보면 4월부터 초반에 잘하다가 5, 6월 되면 떨어지기 시작했거든요. 제가 당시에 사장님께 브리핑 했던건데요, 1월부터 스타트를 했으니 4월에 최고로 갔다가 떨어지기 시작하는 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는 1월에 스타트를 해서는 안된다고 했죠. 그런데 받아들여지질 않았어요. 로이스터 감독님이 저와 같은 관점을 강조하셨습니다. 선수만 건강하면 당장은 못치고 올라가더라도 시간이 주어지면 성적을 낼 수 있다고 하셨죠.

Q 특히 아이들의 경우에는 기다림과 여유가 필요한 것 같은데요.

A 사실 15세 정도까지는 아이들의 감각이 발달하는 시기거든요. 감각을 키워줘야죠. 손도 쓸 줄 알게 하고, 몸도 쓸 줄 알게 하고, 팔, 다리를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손끝, 발끝의 센서들을 향상시켜 줘야 하는 단계거든요. 체력은 아무 때나 만들 수 있어요. 하지만 감각은 감각을 키워주는 그 시기를 지나고 나면 선수생명이 다할 때까지 만들 수가 없어요. 그래서 어렸을 때 했던 스포츠가 어른이 되어서 배우는 것 보다 훨씬 더 잘됩니다. 수영을 예를 들어볼까요? 동네 수영장에서 반 년 정도 선수생활을 해본 아이는 어른이 되어도 선수의 모습이 나옵니다. 하지만 20~30대부터 시작하면 십 수년 간 연습을 해도 그 모습이 나오질 않습니다. 이것이 제가 말씀 드린 감각의 특징이에요. 그때 그 당시에 살려줘야 됩니다. 체력훈련을 한답시고 감각을 덮어버리면 감각이 올라올 공간이 없어요.

Q 어릴 때부터 많은 런닝과 체력훈련을 강조하는 우리나라 현실에 비추어보면 굉장히 도전적인 메시지인데요.

A 교육학에서도 ‘적기교육’이라는 말이 있다고 하더군요, 예를 들면 초등학교 때까지는 암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암기 위주의 교육을 시키면 안되고, 두뇌할동이 왕성해지는 고등학교 때 암기와 관련된 교육을 해야 한다고 하던데요. 그 시기에 가장 잘 배울 수 있는 것을 가르쳐서 배움을 극대화시키면 되는데,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한꺼번에 많은 것을 끌어올리고 싶어하니까 문제가 생기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 번에 두 가지를 다 쫓으려고 하는 것이죠. 예를 들면 외야펑고를 받으면서 공을 받는 기술과 체력을 동시에 만들려고 하는 겁니다. 물론 가능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보다는 각 훈련을 개별적으로 했을 때 훈련의 효율성이 더 좋아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훈련을 받는 사람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모두 준비가 되었을 때 그것을 줘야 하는데 받는 사람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주는 거는 별로 도움이 안되는 거죠.

Q 그렇다면 지도자나 부모님이 아이의 발달상황에 대해 주의깊게 관찰을 할 필요가 있겠군요.

A 그렇죠. 아이들이 성장해 나가는 과정에 따라 필요한 것들이 다르거든요. 아이의 성장이 빠른지 느린지를 파악해서 적절히 선택해야 합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호적상의 나이가 아닌 생물학적 나이로 구분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같은 15세라고 할지라도 발달이 빠른 아이와 조금 더딘 아이 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과정을 달리 선택하는 것이죠. 아이들이 성장해 나가는 과정에서 1년은 엄청난 차이를 나타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Q 기계를 만드는 것과 사람 몸에 적용하는 것은 다를 수 밖에 없는데요.

A 맞습니다. 저도 그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선수를 만드는 것을 자꾸 제조업 하듯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기계는 제가 무슨 짓을 해도 느낄 수가 없잖아요. 하지만 살아있는 생물은 그렇지 않죠. 냉장고를 만들 듯이 생각하면 안되는 겁니다. 8시간에 2대 만들었으니까 16시간 동안 가동하면 그러면 4대가 나오겠네. 사람도 4시간 훈련하는 것보다 8시간 훈련하면 2배 빨라지겠네. 이렇게 자꾸 생각하는 것이죠. 제가 선수를 재활하면서 늘 생각하는 말이 ‘중용’이거든요, 부족하지도 않게! 많지도 않게! 각각의 선수에 알맞게 적절히 해나가는 것! (계속 이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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