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칭의 핵심은 통제를 포기하는 것이다” (폴 아시안테)

미국의 스쿼시 코치인 폴 아시안테와 제이스 저그의 책 <두려움 속으로>의 내용 일부를 출판사의 허락을 얻어 우리야구 6호에 소개한 글입니다.

좋은 코치는 심판과 같다.

심판은 대개 경기 중에 눈에 띄지 않는다. 눈에 띄더라도 나비처럼 휙 왔다가 잠깐 문제만 짚어 주고 다시 가버린다. 하지만 대다수의 젊은 코치들은 끝없는 에너지와 주체할 수 없는 야망으로 모든 문제를 붙들고 있다. 관심을 받은 뒤 다시 스스로에게 집중할 정도로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또한 많은 코치들이 죄책감을 교육의 도구로 삼으며, 선수들이 코치를 실망시키면 처참한 기분이 들게 만든다.

코치는 선수들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 이기고 지는 것은 코치가 아니라 선수다. 선수들이 코치를 위해 뛴다는 생각을 심어 주는 것보다 더 빨리 분노를 유발하는 방법도 없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미주리대학 프레드 코랄 투수코치)

선수를 최우선으로 삼는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팀 전체 시스템을 강요하기보다 선수 개개인을 위한 맞춤형 코칭을 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젊은 코치들은 시스템을 좋아하고 천재 소리를 듣고 싶어 한다. 밤새 경기 영상을 분석하다가 코치실에서 잠드는 사람으로 알려지길 원한다.

대부분의 메이저 스포츠에서 이렇게 된 건 다 텔레비전 카메라 탓이 크다. 관심을 받아야 할 대상은 선수들인데도, 카메라는 주요 경기가 끝나면 어김없이 코치에게 몰려든다. 코치의 성향을 알아보는 간단한 테스트가 있는데, 대부분의 코치는 다음 경기가 언제냐는 물음에 “아, 제 경기는 내일 10시입니다.” 같은 답변을 한다. 아차 싶은 순간이다. 이는 경고 신호다. 경기는 ‘내’가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하는 것이다.

“선수에게 말하는 것을 지도라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양윤희)

우리 선수들을 가끔은 다른 코치에게 배우게 한다

퀘이커 교도들에게는 ‘계속적 계시’라는 신앙론이 있다. 그들은 최종적인 정설, 즉 어떤 경우에도 변치 않는 확고한 진리는 없다고 믿는다. 언제나 더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새로운 경험과 정보에 비춰 자신들이 아는 것을 시험한다. 지진이나 쓰나미를 겪은 사람들이 말해 주듯, 다 안다고 믿는 사람은 종국에는 실망할 수밖에 없다. 하느님의 사랑은 무한하기 때문에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새로운 무언가를 계속 발견할 수 있다. 퀘이커 교도들에게 인생은 질문하고 찾고 배우고 다시 배우는 지속적인 과정이다. 사전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왜’다.

코치로서 지평을 넓히기 위한 LA에서 플로리다까지 견문록 (이도형)

나는 외부 코치와 선수들을 영입해 함께 일함으로써 선수들에게 내가 계속적 계시를 믿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런 방식을 통해 내가 나의 방법에만 연연하지 않는다는 걸 알려 준다. 내 자존심보다는 팀과 선수들의 발전이 먼저다. 배움을 얻으려고 노력하고 또 질문을 던진다. 내가 56세라고 해서 또 흰머리가 희끗하다고 해서 모든 해답을 갖고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선수들이 알기를 바란다. 내가 하는 일은 상자에서 공을 꺼내 코트 위로 굴려 주는 것뿐이다. 이를 통해 ‘나는 여러분과 함께 걸어갈 것이고, 여러분과 함께 답을 찾아갈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내가 다른 코치들을 영입하는 이유도 선수들이 내게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내가 웨스트포인트에 있을 때…….” 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어김없이 선수들의 시선이 돌아간다. 익숙함은 무관심을 낳는 법이다.

1대1 레슨을 하지 않는 세 가지 이유 (드라이브라인)

이따금 전 캐나다 국가 대표팀 코치였던 영국 출신의 마이크 웨이를 데려온다. 짧게 깎은 머리에 피부가 창백한 마이크는 몇 십 년간 형광등이 켜진 네모난 코트 안에서 뛴 수많은 스쿼시 선수처럼 유령 같은 몰골을 하고 있다. 마이크가 선수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이유는 한편으로는 신뢰할 만한 인품과 검증된 전적이 있기 때문이고, 또 한편으로는 젊은 코치들이 하듯 지나치게 자기 방식을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이크는 자신의 훈련 방식에 자신감을 드러내면서도 발리나 드롭을 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음을 인정한다. 엘리트 선수가 엘리트인 까닭은 게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엄격한 잣대와 교조적 신념을 들이대서는 안 된다. 거의 모든 혁신은 원래 선수들에게서 나온다. 선수들이 먼저 알아내고 난 뒤에 코치들이 이를 알게 되는 것뿐이다.

누구에게나 배울 수 있다

마이크는 전 월드 챔피언인 조너선 파워를 코칭하게 된 일화를 자주 얘기한다. 마이크는 1994년경 그레이엄 라이딩이라는 잠재성 있는 십대 캐나다 선수를 지도하게 되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라이딩의 PSA 랭킹이 치솟았다. 어느 날 라이딩이 조너선 파워라는 어린 선수와 친선 경기를 했다. 경기가 끝난 후 마이크와 라이딩이 머리를 맞대고 경기 얘기를 하고 있을 때 파워가 두 사람에게 다가와서 물었다.

“혹시 제 플레이에 대해 조언해 주실 게 있나요?”

마이크가 그렇다고 말하며 몇 가지 조언을 해 줬다. 파워는 자신에게도 강습을 해 줄 수 있는지 물었다. 그 다음 주에 마이크는 파워를 코트로 데려가서 말했다.

“포핸드 드롭을 연습해 볼까?”
“어떤 거 말이세요?”

파워가 물었다.

“어떤 거 말이냐고?”
“네, 어떤 거요? 방법이 여섯 가지라서요.”
“여섯 가지나 된다고?”
“물론이죠.”

파워가 대답하더니, 여섯 가지를 빠르게 시연하며 스트로크의 미세한 차이를 설명했다. 마이크가 이 일화를 들려준 이유는 파워의 엄청난 재능을 알려 주고 파워가 대부분의 일류 선수들처럼 자신의 종목과 새로운 세부 기술에 끊임없이 흥미를 느낀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이 일화를 통해 파워가 자신에게 스쿼시란 종목에 대해 가르침을 준 일화를 알려 주고자 했다. 선생이 학생이 된 셈이었다. 우리는 누구나 배울 수 있다. 누구도 언제나 통제권을 쥘 수는 없다.

뛰어난 선수경력을 가진 지도자에 대한 미신

그런 뒤 나는 정확한 지적도 빼놓지 않았다.

“그런데 말이야, 따지고 보면 파워가 보여 준 드롭샷은 네 개뿐이었어.”

퉁명스럽고 때로는 무신경한 마이크는 선수들을 쥐락펴락한다. 그의 입에서 사탕발림은 기대할 수 없다. 명료하게 생각하고 그 생각을 그대로 말한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말하는 사람의 말은 단순하면서도 구체적이다. 그 말이 복잡하다면, 다시 말해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고 “물론이지”, “분명히”, “솔직히” 같은 군더더기가 붙는다면 그 사람은 실제로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것이다.

코치가 선수에게 묻는 것은 권위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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