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러 하는 축하 (2000안타 세레모니 유감)

뉴스레터 14호 ‘코치라운드 생각’입니다

​야구중계를 보다가 김현수 선수가 2000안타를 쳤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응? 2000안타를 쳤는데 이렇게 조용하다고? 기사를 검색해 보니 그것도 하루 전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한국야구의 경사스러운 사건이 이렇게 평온하게(!) 넘어가다니.. 허탈함과 아쉬움이 올라왔습니다. 작년 최형우 선수의 2000안타 때에도 비슷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KBO리그에서 이 정도 기록이라면 경기를 기꺼이 멈추고, 양쪽 선수들 전부 다 한번씩 포옹하고, 폭죽도 쏴주고, 가장 안타를 많이 맞은 투수들 머리 쥐어뜯는 영상도 전광판에 띄워주고, 함께 고생한 가족들도 비춰주고 하면서 떠들썩하게 축하해 주어도 충분한 업적이라고 생각합니다. 40여년의 프로야구 역사에서 지금까지 16명 밖에 달성하지 못한 엄청난 기록이니까요.

​저는 재작년 박용택 선수의 은퇴투어 논란이 있을 때도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밀며 반대하는 일부 여론과 거기에 휘둘리는 구단, KBO의 태도가 마땅치 않았습니다. 2000안타 세레모니라든지, 은퇴투어 같은 이벤트는 경기결과에 따라 희비가 완벽하게 엇갈릴 수 밖에 없는 스포츠의 세계에서 승패에 관계없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순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만큼은 우리팀, 상대팀 등의 모든 경계가 사라지고 오로지 ‘야구라는 우주의 일부로서 그 순간을 즐기는 존재’로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축하에 인색하게 된 이유가 분명 우리 사회와 스포츠 문화에 숨어있을 겁니다. 자신을 드러내는 것보다는 겸양을 지향하는 문화. 레거시의 가치에 대한 인식부족. 언제부터인가 절대적인 가치판단의 기준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공정성 등등.. 그 이유가 무엇이든 어쨌든 아쉽습니다.

​올 초에 미국야구코치협회 컨벤션에 참가했을 때 첫 순서는 각 리그별 올해의 코치 시상식이었습니다. 대학야구, 리틀야구 등 각 레벨의 코치 중에 한 명을 선정해 그 분들의 이력을 소개하고 함께 박수를 쳐주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베이스볼 어메리카도 매년 TOP 10 코치를 선정해 발표하고, 스카우트상이라고 해서 3명을 선정해 스카우트들이 함께 모여 축하하고 강연을 듣는 행사를 진행합니다. 아마 이렇게 수상자 몇 명을 선정하는 과정이 완전 매끄럽지는 않을겁니다. 여러 논란이 있을 수 밖에 없는게 사람을 평가하고 순위를 정하는 작업입니다. 하지만 그런 소란과 불편함을 뛰어 넘는 가치가 있기에 이런 행사들을 이어나가는 것이겠죠. 사실 그런 시상식과 축하의 자리는 지향하는 가치를 담는 그릇일 뿐입니다.

선수, 코치, 구단, 협회, 미디어, 학부모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축하보다는 비난받는 일에 조금더 익숙합니다. 마음이 쪼개지고 나눠지기 쉬운 환경입니다. 그런 마음들을 연결하고 묶는 자리를 우리는 일부러라도 많이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 2000안타 세레모니나(최정 선수 1932안타) 이대호 선수의 은퇴투어는 보다 떠들썩하게 치뤄지길 바래봅니다. 선수가 아닌 야구를 공기처럼 여기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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